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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헌법재판소는 지역 정당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 구조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17년 후인 2023년 헌법재판관들은 처음으로 위헌 의견을 다수 제시하며 기존 판단에 균열을 냈다./ 서예원 기자. |
'금지된 정당.' 지역에서 출발한 풀뿌리 정치 조직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한다. 현행 정당법상 지역 정당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해결하고 정책을 고민하며 스스로를 '정당'이라 부르는 이들이 존재한다. <더팩트>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제도 밖에 놓인 지역 정당의 실태와 한계, 그리고 가능성을 짚어봤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변화와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왜 지금 한국 정치에 지역정당 논의가 필요한지, 지역에서 시작된 정치가 과연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6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정채영·김시형 기자] 17년 전과 지금, 숫자가 바뀌었다. 그 숫자는 한국 정치의 '금기'였던 지역 정당 문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지역 정당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 구조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판단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5개 이상의 시·도당'과 '시·도당별 1000명 이상의 당원 수' 요건이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정 지역에만 기반을 둔 정치세력의 난립을 막고, 의회 내 안정적인 다수세력 형성을 위한 불가피한 장치라는 판단이었다.
핵심 논리는 간단했다. 지역 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가 심화되고 정치적 분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정당은 '전국적 의사 형성의 매개체'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당시 기준에서 지역 정당은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저해할 수 있는 변수에 가까웠다.
17년 후인 2023년 9월, 헌재 판단은 결이 달랐다. 결론은 여전히 합헌이었지만, 내용은 사실상 '유보된 위헌'에 가까웠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냈고, 4명이 합헌 의견을 내면서 정족수 1명 차이로 기존 체계가 유지됐다. 수치만 놓고 보면 '9:0에서 4:5'로 뒤집힌 셈이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모든 정당이 전국 규모일 필요는 없다"며 현행 제도가 풀뿌리 정치와 시민의 결사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지역 정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구조가 정치 과정의 개방성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 중심 정치구조를 고착화시킨다는 문제의식이 전면에 드러났다.
실제 헌재 내부에서도 '전국정당 조항'에 대한 평가가 갈렸다. 합헌 의견은 여전히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균형 있게 결집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장치'라고 봤지만, 위헌 의견은 "지역주의 문제는 법으로 막을 게 아니라 정치문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과 지방자치 확대 현실을 고려하면, 모든 정당이 중앙 중심 구조를 가져야 할 이유도 약해졌다는 판단이다.

당원 수를 1000명 이상 가져야 한다는 조건에도 재판관 두 명은 새로운 정책 이념을 가진 신생 정당이나 군소 정당의 진입과 활동이 어렵지 않도록 당원의 수를 상대적으로 정하는 것이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규정한 헌법에 부합한다고 봤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의견 분포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헌재가 처음으로 지역 정당 문제를 '민주주의 확장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 이어진 헌법소원들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직접행동 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 등은 창당을 시도했지만 선관위로부터 "정당법상 지역 정당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정당 설립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 선거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부분 심판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구조였다.
헌재의 판단 변화 흐름에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2023년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5명이 위헌 의견을 내어 한 명이 모자랐던 상황은 시스템상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면서도 "여전히 지역만으로는 정당이 설립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막혀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당은 본래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위한 자발적 조직이며, 이러한 조직은 전국 단위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 단위에서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며 "헌법에서도 정당뿐 아니라 정치적 결사(結社)에 대한 보호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기각 판단의 핵심 근거 중 하나는 지역 정당에 대한 우려였다. 헌재는 지역 정당의 설립이 특정 지역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치 풍토를 강화할 수 있고, 이를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 심화와 지역 간 이익 갈등 확대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지역 정당 측은 오히려 현재의 거대 양당 구조가 특정 지역 기반 정치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윤현식 은평민들레당 운영위원은 "지역감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라며 "오히려 지금의 거대 양당 정치가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핵심은 헌재의 인식 변화다. 과거에는 지역주의 억제가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정치 참여의 다양성이 같은 무게로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현재 구조는 여전히 합헌 상태다. 그러나 위헌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불안정한 합헌'이라는 점에서, 다음 판단에서는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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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도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채훈병 은평민들레당 사무처장은 "현재의 정당법 때문에 정치적 권리에 제약받고 있는데,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면 그 주장 자체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새롬 기자 |
통상 헌법소원은 새로운 사정이나 침해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제기할 수 있다. 지역 정당 역시 무소속으로 후보에 출마할 경우 그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적 한계와 지역 정치의 현실을 새로운 근거로 삼아 재차 헌법적 판단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지역 정당들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결국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선거 출마 자체가 또 다른 헌법소원을 위한 수단처럼 비칠 경우, 지역에서 시작된 정치 실험의 본래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채훈병 은평민들레당 사무처장은 "무소속 후보 전략을 쓸지 논의를 했지만, 그렇게 하면 민들레당을 알릴 수는 있어도 지역 정당 운동 자체에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봤다"며 "현재의 정당법 때문에 정치적 권리에 제약받고 있는데,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면 그 주장 자체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결국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지만, 지역 정당 논의 자체를 멈추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헌재 내부에서도 위헌 의견이 다수에 가까워진 만큼, 앞으로는 입법과 정치의 영역에서 지역 정당 제도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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