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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캔들] 왜에 원한 갚고 망부석 된 신라 공주 Only
▲박제상의 충절이 실린 역주 삼강행실도 영인본

▲박제상의 충절이 실린 역주 삼강행실도 영인본

망부석(望夫石)은 절개 곧은 아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죽어서 돌이 되었다는 설화 속에 나오는 돌이다.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는 곳이 대체로 고개나 산마루인 까닭에, 고개나 산마루에 사람을 닮은 형상을 한 돌에는 대개 이런 설화가 깃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것이 치술령(致述嶺)의 망부석 설화이다.

치술령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날씨가 좋으면 동해뿐만 아니라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고 한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치술령 망부석의 주인공은 신라 사람인 박제상의 처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가 있던 눌지왕의 두 아우를 구해 낸 충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과 삼국유사 기이 내물왕 김제상에 실려 있다. 먼저 삼국사기 열전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실성왕은 즉위하자마자 이웃 나라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402년(실성왕1) 왜에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412년(실성왕10) 고구려에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보냈다. 미사흔과 복호의 형인 눌지가 실성왕에 이어 왕이 되자 볼모로 잡혀 있는 동생들을 구출하려 했다. 왕은 신하들의 천거를 받아 당시 삽량주간(歃良州干: 삽량군 태수)으로 명망이 높던 박제상을 보냈다. 박제상은 혁거세의 후손으로 파사왕의 5세손이다. 418년(눌지왕2) 박제상은 고구려 장수왕을 설득하여 복호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 율포에서 배를 타고 왜로 떠났는데,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내는 포구에서 대성통곡하며 그와 이별하였다. 박제상은 인자한 고구려왕과는 달리 왜왕은 의심이 많다고 판단하여,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 온 사람처럼 왜인들을 속였다. 왜왕이 안심한 틈을 타 그는 미사흔을 구출해 미리 신라로 보내고, 그들에게 잡혔다. 왜왕이 협박하고 회유하였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충절을 지키다가 귀양 간 목도(木島)에서 화형을 당해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눌지왕은 그를 대아찬으로 추증하고 그의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차이를 꼽자면 박제상과 복호, 미사흔의 이름, 미사흔의 탈출 시점 그리고 박제상의 가족에 관한 내용 등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름을 김제상, 미해, 복해라고 하였고 미사흔이 눌지왕 10년에 탈출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박제상의 아내에 대해서는 그녀가 박제상과 이별한 후 그리워하다가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를 바라보면서 통곡하다가 죽었는데, 그녀를 치술신모(鵄述神母)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이 기록과 망부석 설화를 종합해 보면 치술령에서 통곡하다 죽은 박제상의 처가 치술령 망부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치술신모라는 이름이 그녀가 죽은 곳의 이름 때문에 생긴 것일까. 삼국유사 왕력 편은 실성왕이 치술의 아버지라고 하였다.(신라사학회, 신라 속의 사랑 사랑 속의 신라, 2006) 이 단서를 가지고 화랑세기를 보면 치술공주라는 여성을 찾을 수 있다. 화랑세기에서는 그녀가 실성왕의 딸이고 제상의 처라고 하였다. 화랑세기 속의 치술공주는 제상공과 혼인하여 삼아라는 딸을 두었는데 제상공이 왜로 떠나려하자 장사(長沙: 삼국유사에서도 나온 지명)에 드러누워 오랫동안 크게 울며 일어나지 않았다.

눌지왕이 그녀를 위로하다가 황아(皇我)를 낳았다. 황아는 눌지왕의 총신과의 사이에서 벌지(伐知)와 덕지(德知)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치술의 원한’을 갚기 위해 그들에게 무(武)에 힘쓰도록 하였다. ‘치술의 원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화랑세기에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삼국사기·삼국유사 속에 보이는 박제상의 죽음에 관한 원한임을 당시 신라인도 지금의 우리도 알 수 있다.

황아의 아들 교육은 효과를 보았다. 삼국사기 자비왕 6년(463) 2월조에는 신라의 삽량성을 침범했다가 퇴각하던 왜군을 맞아 벌지와 덕지가 대승을 거뒀다는 기사가 있다. 외조모의 원한을 이들 형제가 갚은 것이다. 떠난 지아비를 그리워하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의 실상은 그 지아비를 돌아오지 못하게 막은 이들에게 원한을 갚은 이야기였다.

치술공주가 그리워만 하다가 죽었다면 어느 이름 없는 고개의 망부석의 주인공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당대에는 아니지만 후대에 자신의 원한을 갚았기 때문에 신라인들은 그녀를 치술령의 망부석 주인공으로, 치술신모로 받들었을 것이다. ‘원한을 갚는다’는 것은 악연의 고리를 만들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인지라 권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때때로 복수를 권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의 복수는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

[조경란 ㅣ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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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07 11:03 입력 : 2011.04.07 12: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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