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이기자] 11월 둘째 주, G20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정부는 서울 시내의 경호를 본격 강화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지난 9일 아침 직장인들의 출근길은 사뭇 달랐다. 지하철 역 안은 혹시 모를 교통 체증을 의식한 듯 평소 보다 조금 이른 시간부터 붐볐다. 몇몇 시민들은 지하철 여기저기에 붙은 G20 홍보물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전 7시 반. 서울에 직장을 둔 인천·부천 거주자들의 환승역인 신도림역엔 약 10m 간격으로 경찰들이 배치됐다. 2인 1조로 된 경찰특공대들도 역 안 곳곳을 누볐다. 역내 순찰을 도는 한 경찰은 "평소에는 경찰이 한 명도 없었는데 지금은 신도림 역사 안에만 대략 100여 명이 들어와 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100배 강화된 보안인 셈.
삼성역으로 가는 2호선 전철 안은 서 있는 사람들의 등이 서로 맞닿으며 약간 붐비는 듯 했지만 보통 때와 같았다. 다만 몇몇 사람들이 전철 벽에 붙은 G20 광고물을 보며 "이것 때문에 귀찮게 됐다" "삼성역 그냥 지나친다는데 그날 어떻게 할 거냐"는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 시민들의 우려 섞인 대화는 아랑곳없이 지하철 천장에 달린 TV에서는 G20 홍보영상이 '무한' 반복됐다.
삼성역에 내리자 승강장 한 쪽 구석에서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는 경찰들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 수는 역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늘어났다. "MAY I HELP YOU" 혹은 "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라는 어깨띠를 맨 역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가세했다. 지하철 이용객들은 역사를 휩쓸고 다니는 경찰들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역무실은 어수선했다. 입구정면 벽에는 실시간 감시화면이 나오고 있었고, 다른 쪽 벽은 테러방지와 관련한 지침들로 채워져 있었다. '직원 및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종이가 붙은 작은 방은 상황통제실인 듯 보였다. 역의 한 관계자는 "몇 명인지는 보안상의 이유로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경찰수가 엄청 많다. 조용하지만 빈틈없는 보안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5번 출구를 지나 지하통로로 향했다. G20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가 가까워지자 약 20m 간격으로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지하통로와 코엑스가 만나는 입구에는 X선 검문대가 2개 설치됐다. 코엑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 검문이 필수. 검색대 사진을 찍으려 하자 한 경찰이 다가와 제지를 가했다. 그는 "보안상의 이유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필요하다면 서울시경이나 강남경찰청의 허락을 먼저 받으라"고 경고했다.
검색을 마친 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코엑스 1층으로 올라갔다. 경찰과 경찰특공대가 2인 1조로 순찰을 도는 가운데 경호원들의 간격은 약 5m로 줄어있었다.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자 여러 대의 검문대가 설치된 정문이 보였다. 코엑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약간은 어색한 듯 검문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건물 밖은 어떨까. 정문에는 G20 회원국들의 국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곳에 10분 정도 서 있으니 총 5개 팀의 경찰순찰조가 지나갔다. 코엑스 앞 인도로 나서자 3대의 대형버스가 차도에 주차돼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앞 유리창에 'G20 경력수송'이라고 적혀 있었다. 각기 다른 지역의 경찰을 수송해온 버스들이었다.
코엑스 인근 영동대로와 봉은사로는 G20정상회의가 열리는 11․12일에 교통통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추운 날씨에도 환경미화원들은 물차까지 동원해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고, 청소용역원들도 떨어지는 낙엽을 연신 쓸어 담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찬바람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님 온다니까 시에서 청소 한 번 겁나게 한다"며 "깨끗해지면 좋긴 하지만 너무 티 나게 하는 거 아니냐"고 숙덕였다.
주변을 한 바퀴 돈 후, 영동대로를 따라 청담역까지 걸어갔다. 약 20분 동안 만난 경찰은 총 9명. 4만5천여 명의 경찰이 서울에 있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영동대로에서 은행을 주우며 산책을 하던 한 주민은 "쉼 없이 마주치는 경찰과 여기저기 걸린 플랜카드만 아니면 아직까지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일 저녁부터 코엑스를 둘러싸고 높이 2.2m의 녹색 펜스가 세워졌다. 정상회의 기간 동안에 차량과 일반인 출입을 강력히 통제하겠다는 것. 또 오는 12일에는 봉은사로와 아셈로가 전면, 영동대로와 테헤란로가 절반가량 통제된다. 지하철도 삼성역을 무정차로 지나쳐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