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민·박형남기자] “어릴 때 철봉 매달리기 선수였어요. 이른바 ‘원숭이’로 통했죠.” 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인터뷰 과정에서 던진 말이다. 기자가 “생김새도 비슷한 것 같다”라고 삐딱한 질문을 던지자 조 의원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도 했다. “사진이 몇장 없다”라며 조 의원은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참동안 고르고 있었다.
드디어 ‘추억의 앨범 토크’가 시작됐다. 조 의원은 어릴 때의 추억을 꼼꼼이 기억했고, 때로는 세월을 넘나들며 사진 속 그 당시 모습을 상세히 소개했다. 게다가 놀기만 좋아해 공부에 나몰라했던 시절의 학업 성적표를 공개하고 싶어했지만 이를 찾지 못해 아쉬워하는 눈빛이 살짝 보였다. 학창시절 완벽한 ‘원숭이’로 통하는 조 의원의 과거를 들춰봤다.

삼형제 중 둘째인 조 의원은 형제들 사이에서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밥 먹을 때와 자는 시간 말고는 집에 붙어있는 때가 거의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다만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극성맞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 의원 스스로도 “애들하고 싸움은 안했다며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고 밝혔다.
그의 어린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조 의원은 어린 시절이 잔상으로만 남는다면서도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 이사 가던 때를 이야기 했다. "학교에 자가용 타고 등교했었는데, 어느 날 리어카에 살림살이를 다 싣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죠. 그게 큰 충격이거나 마음의 상처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 때 '우리 집이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조 의원은 항상 밝았다. 집안 환경도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차츰 회복이 돼갔고, 건물도 제대로 없는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가면서 더 너른 벌판에서 실컷 뛰어 놀 수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집안이 어려워도 크게 걱정을 안했던 건 어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믿어서였던 것 같아요. 제 아버지가 4형제 중 장남이셔서 책임감도 강하셨거든요. 아버지라면 금방 일어설 수 있겠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죠."
아버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조 의원을 보며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는지 물었다. 농사짓는 집안의 딸이었던 조 의원 어머니는 밥을 먹을 때 마다 농부의 정성을 강조하며 쌀 한 톨 남기면 안 된다는 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요즘이야 다들 소식하는 분위기라 괜찮지만 예전에는 밥 안남기고 먹느라 힘들 때 많았습니다. 하하. 가끔 체해서 고생하지만 그래도 좋은 습관인 것 같아요. 어머니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학생운동 서클에 적극 가담하게 된 조 의원은 격정의 20대 초반을 보냈다. 대학 3학년 후반기에 가서는 학생운동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며 몇 차례 시위를 주동할 정도였다. "그 때 구속은 안됐었어요. 학원자율화 조치라는 게 취해졌거든요. 대신 군대로 강제 징집을 시켰었죠. 저도 그렇게 해서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됐고요."
학생운동 전력이 있었던 터라 군대에 가서도 말년 때까지 고생이 많았다. 보안사에 사찰대상으로 올라 항상 감시를 받았던 것. 그는 병장 올라가면서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자고 있는 저를 깨워서 어디를 가자고 하더라고요. 도착해보니 당시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보안사의 송파분실이었죠. 5일 간 정말 고생했습니다."
보안사에서 조 의원을 잡아간 빌미는 그가 군 휴가를 다녀오며 사온 책이 금서로 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87년 당시에는 박종철 사건 등으로 학생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데 혈안이 돼 있었던 때였다. 조 의원은 잡혀간 이후에 학생운동 선.후배들의 이름을 모두 대라며 조 의원에게 협박과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병장이고 하니까 시간이 남아서 책을 읽으려고 사회과학책을 하나 사왔는데 그게 금서였던 거죠. 맞기도 하고 '살아서 못나간다'는 협박도 받고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죠."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복학해 89년 초에 대학을 졸업했다. 조 의원도 학교를 떠나 학생운동에 매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천성을 속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자식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말을 도저히 거역할 수 없었다. “대학만큼은 졸업하라!”는 말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 “학생운동한다고 부모님 속도 많이 태웠는데 졸업이라도 해서 학사모 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대학 때 한 유일한 효도가 아닐까 싶어요."
조 의원은 학사모를 쓴 자신 옆의 여성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아내라고 귀띔했다. 대학 3학년 때 만나 변치 않는 사랑으로 항상 곁은 지켜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내와는 대학 때 학생운동 작전 펼치면서 커플로 위장했다가 진짜 커플이 됐죠. 잘해준 것도 없는데 군대도 기다려주고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부인까지 학생운동을 하며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학생운동을 제외하고는 대학시절 추억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다른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었냐고 독촉하다시피 물었다. "학생운동 이야기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저희 서클에서 제가 인기투표로 2등 했습니다. 하하. 어느 날 후배들이 와서 말해주기에 1등이 누군지 알아봤더니 저보다 못생긴 서클 동료더라고요. 어찌된 거냐고 물으니까 투쟁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서 그렇다고…. 전 내심 외모로 뽑은 줄 알고 기대했다가 웃음만 났었죠.(웃음)"

조 의원은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다. 자신과 아내를 절묘하게 닮은 아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아빠로써 점수를 매겨보면 어느 정도냐고 질문해봤다. "정치한다고 밤늦게나 집에 들어가고, 좋은 아빠는 아닌 것 같아요. 아들이 어릴 적에는 엄마한테 '아빠는 왜 나하고 안 놀아 주냐'고 따지기도 했었다는군요. 보통 정치인들이 그렇지만 제 아들을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많습니다."
조 의원은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아들이 좋은 게 많을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라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민감한 사춘기 아들한테는 아빠가 부담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 "학교에서도 편하게 지내고 싶어도 자제해야 하는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아빠 직업이 뭔 줄 다 아니까요. 특히 선거 때 '너희 아빠 벽보 붙어 있는 거 봤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의식되고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점은 참 미안하게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휴가철 가족들과 여행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 의원은 멋쩍게 웃으며 올해는 휴가를 못 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당위원장에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어 휴가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래서 제가 좋은 남편, 멋진 아빠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대신 꼭 바른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겠다는 약속을 해주고 싶네요."
[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폴리피플들의 즐거운 정치뉴스 'P-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