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일본이 중의원 비례대표 수를 31석 줄이기로 하면서, 한국 의회에 줄 시사점에 관심이 모인다. 사진은 지난 9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의석이 비어 있는 모습. /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일본이 중의원 비례대표 의석을 31석 줄이기로 하면서, 한국 정치권에도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은 한국에서도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지만 실제 감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며 정치적 대표성 강화를 위해 오히려 정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9일 일본 자민당·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 등 3당은 중의원 비례대표 의석을 감축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에 합의했다. 역대 최대 규모(31석)의 감축으로, 법안이 통과하면 중의워 정수는 현행 465석에서 434석으로 줄어든다. 일본은 앞서 2000년 500석에서 480석으로 줄인 데 이어 소선거구 통합으로 정수를 단계적으로 줄여왔다. 이번엔 야당의 동의까지 끌어내면서 12월 12일에 끝나는 임시국회 회기 내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편이다. 지난 22대 총선 당시 2024년 2월 6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국회의원 의원 수 줄이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보다 의석수를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61.5%로 가장 많았고, '현재보다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12.8%에 불과했다. '현재 의석 수가 적당하다'는 응답은 12.8%였다.
정치권에서도 선거철마다 '의원 수 감축' 공약이 되풀이됐다. 2012년 안철수 후보(100명), 2023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30석), 2024년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250석), 2025년 김문수 대선 후보(10%)까지 감축 공약이 되풀이됐다. 한국에서 의원 정수가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여파 속에 치러진 2000년 16대 국회(299→273석)가 유일한데, 2004년 17대 국회에서 다시 원상 복귀됐다.
![]() |
|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22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의원 수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법을 개정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배정한 기자 |
의원 수 감축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센 배경에는 국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국회는 국정감사NGO모니터단에서 ‘낙제점(F학점)'을 받았다. 피감기관 775곳 중 245곳은 기관장이 질문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자극적인 정쟁이 일상화된 국회에 대한 피로감이 "숫자라도 줄여 비용이라도 덜자"는 감축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원 수 감축으로 정치 불신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려우며, 대표성 확대를 위해 오히려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재환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보기 싫은 사람의 숫자를 줄이자는 감정적 대응"이라며 "숫자를 줄인다고 정치가 나아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제도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은 양원제인 반면, 한국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어 한국보다 의석 수가 훨씬 많고, 인구도 두 배에 달한다"며 "한국은 줄이는 게 아니라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일본처럼 비례대표 의석을 줄일 경우 국회의 '불비례성'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희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불비례성이 높기로 유명한 한국 선거제도에서 이를 더 강화하는 방향이어서 감축에 찬성하기 어렵다"며 "비례 축소는 소수정당의 진입이 막아 양당 구조를 굳어지게 하고, 여성·청년·장애인 등 과소대표 집단의 기회도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 |
|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개혁이 먼저라고 입을 모으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관련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사진은 개혁진보 4당(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의원들이 지난 4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대응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김성렬 기자 |
전문가들은 의원 정수 논쟁에 앞서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가 먼저라고 입을 모으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관련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정개특위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꾸려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선거제도를 두고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교수는 "규칙을 바꾸는 당사자가 그 규칙의 적용을 받는 국회에서는 '현상 유지'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앞서 조정식 국회의장은 지난 6월 18일 비교섭단체인 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으로부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조기 구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그러나 23대 총선까지 500여 일이 남은 가운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비교섭단체 소속 한 비례대표 의원은 "의원 수 축소 공약은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 오히려 소수의 지역구 의원 중심으로 기득권이 강화돼 '족벌 정치'가 될 것"이라며 "한국은 인구 대비 의원 수가 적어서 오히려 의원 숫자를 한 400명 정도로 늘려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를 받아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2월 1~2일 실시한 여론조사다. 무선 RDD(97%)·유선 RDD(3%) 표집 틀을 통한 자동 응답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3.3%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