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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의원들이 실물이나 장비를 활용해 현안을 직접 보여주는 질의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이 춤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
[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실물을 직접 작동시키거나 착용해 문제점을 보여주는 '시연형 질의'가 잇따르고 있다. 자료나 수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안을 현장에서 직접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되는 가운데, 국감 질의가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되는 미디어 환경과도 맞물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감에서는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 2대를 회의장에 들였다. 로봇들은 회의장을 돌아다니며 의원들과 악수하고 음악에 맞춰 춤과 무술 동작 등을 선보였다. 이 의원은 이를 통해 중국의 피지컬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세와 국내 투자 부족 문제를 제기했다.
이튿날 교육위원회에서는 AI글라스가 등장했다. 김문수 민주당 의원은 AI글라스를 직접 착용한 채 수능 영어와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을 시연하며 해당 기기가 부정행위에 악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스마트안경 등 새로운 부정행위 수단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과 시청각 교육자료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방위원회에서는 실물 시연이 질의의 근거로 활용됐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모형 권총과 탄창을 직접 조작해 실탄 분실 방지를 위해 부착한 봉인지가 장전과 탄창 교체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스마트글래스를 착용하고 국방부 청사 내부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스마트글래스 반입을 규율하는 별도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중국 브랜드 전기차가 국방부 경내에 진입하는 영상도 공개하며 보안 문제를 제기했다.
실물을 활용한 국감 질의 자체는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2024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에서는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배추 한 포기를 직접 들어 보이며 가격과 수급 관리 문제를 따져 물었다.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탈북자 단체가 북한으로 보내는 쌀과 달러 등이 담긴 페트병을 제시하며 대북 물품 살포 관리 문제를 질의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구현한 딥페이크 영상을 상영해 AI 기술의 악용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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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감 장면이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짧은 영상으로 확산하는 미디어 환경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천하람 개혁신당의원이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뉴시스 |
지난해에도 국감장에서 실물이 잇따라 등장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SPC 작업복을 직접 착용하고 끼임 사고 발생 시 소재가 쉽게 찢어지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고, 정혜경 당시 진보당 의원은 학교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20㎏이 넘는 밥솥을 들고 나와 급식노동자의 작업환경과 산업재해 문제를 제기했다.
올해 사례에서 눈에 띄는 점은 실물을 단순히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작동시키거나 착용해 문제 상황을 재현하는 방식이 연달아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질의 방식은 국감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감 질의가 회의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나 SNS에서 수십 초짜리 영상으로 편집돼 다시 확산되는 만큼, 의원실에서도 질의의 내용뿐 아니라 이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전달할지를 함께 고려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한 국회 보좌진은 "과거에는 질의서와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준비했다면 지금은 어떤 대목이 영상으로 잘릴지, 어떤 장면이 뉴스나 쇼츠에 잡힐지까지 함께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책적으로 의미 있는 질의라도 시각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묻힐 수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연형 질의는 복잡한 사안을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눈길을 끄는 장면 자체가 목적이 될 경우 국정감사가 정책 검증보다 의원 개인의 홍보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실물과 시연이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피감기관의 구체적인 답변과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지 여부가 평가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이 사안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은 국감의 전달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유튜브와 쇼츠 등을 지나치게 의식해 이벤트성 퍼포먼스가 앞설 경우 국감의 본래 취지와 진중함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도한 퍼포먼스는 오히려 의원 개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