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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서 필요한 필수 요소는 염치와 양심, 책임지는 태도인데 최근 정치권은 이를 결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대장동·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위례신도시 조작기소 의혹 사건 청문회에 참석해 서영교 위원장에게 발언권 관련 항의하는 모습. /배정한 기자 |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햄버거를 좋아한다. 두툼한 패티와 달큼한 소스, 신선한 채소가 어우러진 한 입은 조화로운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스가 없으면 퍽퍽하고, 채소가 빠지면 느끼하다. 한 입을 먹더라도, 어느 한 가지가 빠진다면 햄버거도 어딘가 밋밋하고 찝찝한 맛만 남긴다. 무엇보다, 쉽게 물린다. 결국 '다음 한 입'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햄버거를 내려놓게 된다.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맞물릴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 때 꽉 찬 행복감처럼, 제대로 된 정치를 맛본 유권자는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다. 정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염치와 양심, 그리고 책임지는 태도가 필수적인 기본 재료다. 특히 염치는 햄버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스 같은 역할을 한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빠지는 순간 모든 것을 퍽퍽하게 만들고 전체의 조화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다.
정치를 지탱하는 필수 요소는 '염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이 필수적인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 개인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불거져도, 당 내외로 지리멸렬한 갈등이 이어져도 누구 한 명 책임지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음주 운전을 해도, 비리가 발각돼도 '모르쇠' 일관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 잘못을 지적하면 되레 큰소리치기까지 한다. 한 현역 의원은 "어차피 뉴스에서 하루 시끄럽고 만다. 국민은 기억도 못 한다"고 했다. 인사 검증이 이뤄지는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염치가 실종됐다. 퍽퍽하고, 밋밋하고,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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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요소를 결여한 정치는 시민들의 신뢰 하락 및 투표율 저하로 이어진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중동 사태 대응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배정한 기자 |
결국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하락으로 귀결된다. 달고 시고 자극적이라 한 번 먹고는 그다음의 맛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서서히 질려버린다. 실제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4년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국회 신뢰도' 응답은 20.56%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인 30개국 가운데 28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OECD 평균치(36.52%)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거리감이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역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퍽퍽한 정치의 맛에 '염증'을 느꼈다. 반복되는 정치의 무책임 속에 찝찝함을 느끼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자신을 보수라 밝힌 경남에서 만난 한 70대 유권자는 "우리 집 세 명은 모두 국민의힘 지지자인데, 반복되는 정치의 모습에 회의를 느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투표하지 않으려 한다"며 "투표하지 않는 것도 우리의 권리"라고 했다. 또 다른 유권자도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치에 회의감과 혐오감을 느끼는 유권자를 다수 보면서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태도, 그 하나뿐이다. 현장에서 정치인들의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주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다. 평택에서 만난 양 모(75·여) 씨도 "자기 먹고 살려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뽑아주면 안 된다"면서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