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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전후해 내려지는 정치권의 중대 결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DJP 연합' 균열부터, 진보 진영의 역사적 총선 대승에 기여한 '범야권 대연대'까지 설을 정치적 숙성기 삼아 이뤄졌다. 국회의사당 전경. /더팩트 DB |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전후해 내려지는 정치권의 중대 결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DJP 연합' 균열부터, 진보 진영의 역사적 총선 대승에 기여한 '범야권 대연대'까지 모두 설을 정치적 숙성기 삼아 이뤄졌다. <더팩트>는 설 전후로 새겨진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기록을 돌아보고, 6·3 지방선거를 100여 일 앞둔 정치권의 정무적 움직임을 상·하 2편에 걸쳐 관측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이태훈 기자] 2000년 2월 24일(설 2월 5일).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1997년 함께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당시 김 대통령이 속한 새정치국민회의와 김 총재의 자민련은 15대 대선을 불과 45일 앞둔 1997년 11월 3일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이루면서 상대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었다.
이후 DJP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각각 맡으면서 공동여당 체제를 이뤘다. 그러나 DJP 연합 합의문의 핵심이었던 의원내각제 개헌 약속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이에 김 총재는 2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부터 공동여당의 길을 완전 포기하고 야당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면서 역사적 연합은 갈라선다. 그러나 이 결단으로 자민련은 같은 해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17석으로 쪼그라드는 결과를 떠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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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JP화보집 <운정 김종필>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뉴시스 |
2007년 2월 6일(설 2월 18일). 김한길을 비롯한 의원 23명이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집단 탈당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노무현 대통령 주도로 2003년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국회 과반인 152석을 얻는 큰 성과를 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내리 참패하면서 참여정부 지지율은 급락했고, 당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이들이 탈당하면서 국회 1당을 한나라당에 내주기에 이른다.
여야 모두에 압박을 받던 노 대통령도 2월 22일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여당 지위마저 상실한다. 이후 탈당파 의원들이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과도 합당하며 의원 이탈은 없었던 게 됐다. 그러나 이어진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패하면서 일련의 탈당 결단은 소득 없이 끝나게 된다.
2012년 1월 26일(설 1월 23일). 박근혜 위원장이 이끌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15년 만에 당명 변경을 결정한다. 당시 당이 '디도스 사건'과 '고승덕 돈봉투 폭로 사건' 등으로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자, 대대적 쇄신책 일환으로 당명 변경을 꺼낸 것이다. 이후 박근혜 비대위는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같은 해 3월 한국갤럽 조사 기준 52%의 긍정 평가(부정 24%)를 받았고, 18대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2017년 2월 1일(설 1월 28일).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 당하면서 조기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자, 반전이 절실했던 보수 진영은 반 전 총장을 내세워 대선판을 흔들려 했다. 반 전 총장도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어서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드는 데 제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며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1월 12일 귀국 후 2주간 반 전 총장은 여러 구설에 오르며 흔들린다. 20%대 중반에 이르던 지지율도 설 목전엔 10%대 초중반으로 곤두박질쳤고, 연휴 직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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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 당하면서 조기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자, 위기에 빠진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1월 12일 귀국 후 2주간 여러 구설에 휘말리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고, 귀국 약 3주 만에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더팩트 DB |
2024년 2월 5일(설 2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킨 채 22대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한다. 준연동제를 유지할 경우, 필연적으로 위성정당이 탄생하게 되어 이 결정으로 이 대표와 민주당은 적잖은 비판에 직면한다. 다만 이 대표는 준연동제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설 직후 진보 세력 규합에 나섰다. 준연동제 유지 결정 이후 조국혁신당의 총선 '비례 돌풍'까지 겹치면서 진보 진영은 22대 총선에서 189석을 쓸어 담는 '역대급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더팩트>와 만나 설 전후로 굵직한 정치적 결단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은 데 대해 "명절은 인위적이지 않게 언론 노출을 줄이면서, 주변 의견과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현재 정치인들은 명절 민심 파악을 과거와 비교했을 때 예민하게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아직도 (명절은) 정치인들에게 '결단의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시기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xo9568@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