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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비사㊽] 러시아 내 '北 벌목장 탈출 노동자' 귀순 <3> Only
"통일 초기 형태"…체제 붕괴 조짐으로 해석 UNHCR과 접촉해 '우회 귀순' 방안도 고려 통일안보조정회의→당정회의→대책반 구성

"통일 초기 형태"…체제 붕괴 조짐으로 해석
UNHCR과 접촉해 '우회 귀순' 방안도 고려
통일안보조정회의→당정회의→대책반 구성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4년 러시아 내에서 발생한 북한 벌목 노동자들의 귀순과 정부의 대책 마련 과정을 당시 작성된 외교 전문으로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4년 러시아 내에서 발생한 북한 벌목 노동자들의 귀순과 정부의 대책 마련 과정을 당시 작성된 외교 전문으로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2편에 이어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정부가 북한 벌목 노동자 귀순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로 한 배경에는 '통일 초기 조짐'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체제 붕괴 계기로 해석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당시 전문에는 '최근 북한인 탈주자의 증가는 동·서독 통일 초기 형태와 같은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정부가 추산한 탈출 노동자 규모도 170여 명에서 200여 명으로 증가했으며 귀순 요청 사례도 속속 집계되고 있었다.

정부는 해당 사안을 북핵 문제와 연결 짓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4월 13일 "러시아 내 작업장에서 탈출한 북한 벌목공 대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남북 대화에 응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수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 문제를 일시 유보적으로 처리했지만, 북한이 계속 거부하고 있어 인도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 대통령은 한승주 외무부(외교부) 장관을 러시아로 보내 한러 외무장관 회담까지 갖도록 했다. 탈출 노동자 문제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러시아를 활용해 북한을 압박하려 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러시아는 "이곳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들은 국내외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면서 "북한 벌목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 벌목 노동자 귀순 문제를 북한 붕괴의 신호로 해석했다. 이후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선 탈출자가 망명을 희망한다면 적법한 조치를 거쳐 희망자 전원을 국내에 데려온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외교부
정부는 북한 벌목 노동자 귀순 문제를 북한 붕괴의 신호로 해석했다. 이후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선 '탈출자가 망명을 희망한다면 적법한 조치를 거쳐 희망자 전원을 국내에 데려온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외교부

러시아의 긍정적 입장은 1992년 독일과 일본 매체의 취재로 밝혀진 '하바롭스크 북한 벌목 노동자 인권 유린' 보도에 기인한다. 러시아는 곧바로 자체 조사단을 꾸려 진상 파악에 나섰고, 조사 결과에 따라 북한에 협약 위반을 통보했다. 특히 북한에 "북러 임업 협정을 개정하든가 아니면 폐기하라"고 강하게 반발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접촉하기도 했다. UNHCR을 통한 '우회 귀순'이 이뤄진다면 북한을 덜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이 탈출 노동자 수용 문제를 납치라고 비난한 데 대한 반박 근거도 될 수 있었다. 다만 절차상 난민 인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심사를 받더라도 난민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점 등이 한계로 꼽혔다. UNHCR이 탈출 노동자 임시 보호와 항공료를 정부가 해결하라고 밝힌 점도 부담이었다.

탈출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에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중국은 북한과 '밀입국자 송환 협정'을 맺고 있던 터라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정부의 협조 요청에도 중국은 "남북 사이에 어려운 외교적 국면에 처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한 벌목 노동자 귀순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 정부는 이후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조용하고 신중한 외교적 접근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북한 벌목 노동자 귀순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 정부는 이후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조용하고 신중한 외교적 접근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정부는 1994년 4월 15일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를 열고 '탈출자가 망명을 희망한다면 적법한 조치를 거쳐 희망자 전원을 국내에 데려온다'는 방침을 밝혔다. 같은 날 열린 2차 관계 부처 회의에서는 △러시아와의 교섭 △UNHCR 협조 요청 △정부 내 대책반 구성 등 후속 조치가 결정됐다. 중국과 관련해선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조용하고 신중한 외교적 접근을 시행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일주일 뒤 열린 당정 회의에서도 탈출 노동자 귀순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당정은 발표문을 통해 "탈주 노동자들의 국내 귀순에 적극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며 "특히 이들을 국내에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정착금 지급보다는 직업 교육과 사회 적응 훈련 등을 통한 자립 기반 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4편에서 계속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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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00:00 입력 : 2026.02.01 0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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