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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최초 고립·은둔청년 전담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에서 청년들이 내부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기지개센터 제공 |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청년 1300명을 직접 만나 관리하는 전담 인력이 10명도 되지 않습니다."
전국 최초 고립·은둔청년 전담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 김주희 센터장은 지난달 25일 <더팩트>를 만나 인력난을 토로했다.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대학로에 위치한 센터는 개관 1년을 갓 넘겼지만 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835㎡(약 253평) 규모의 공간에 올해에만 8272명이 다녀갔다.
1층은 '우리집'이라는 이름처럼 큰방과 작은방, 거실, 주방, 책방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김 센터장은 "집에서 어렵게 나온 만큼 두려움 없이 아늑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청년들의 의견을 반영해 '집속의 집' 컨셉으로 공간을 구성했다"고 했다. '칸막이'가 설치돼 홀로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 '내방'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내 고립·은둔청년은 약 1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규모다. 그만큼 청년들의 지원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올해 센터의 대면 사업 프로그램에 4445명이 신청했지만, 수용 가능 인원은 1323명에 불과했다. 김 센터장은 "전담 인력 26명 중 청년들을 대면하는 인력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데, 이들이 기획·연구·교육 업무까지 겸하고 있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울산청년미래센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해 10월 개소 이후 현재까지 200여 명의 청년들이 지원 사업에 신청했지만, 참여한 인원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8개 시·도로 청년미래센터 시범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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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터 1층에 '칸막이'가 설치돼 홀로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 '내방'이 눈길을 끌었다./김시형 기자 |
전문가들은 일상 회복, 정서 지원, 관계망 형성, 사회 진입 등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고립·은둔청년에게 '개입'한다. 하지만 보편일률적인 프로그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청년마다 고립 계기와 배경, 회복 속도가 다른 만큼 개인의 특성과 상태에 맞춘 세분화된 맞춤형 회복 지원이 필요하다.
기지개센터는 대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들을 위해 온라인 과정도 운영한다. 김 센터장은 "아직 밖으로 나오기 힘든 분들에게 나오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이 될 수 있다"며 "온라인상에서라도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경험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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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청년기지개센터가 운영하는 고립·은둔 청년 참여 온라인 '가상회사'의 모습. /센터 제공 |
취재진이 방문한 이날 오후 1층 주방에서는 청년 4명이 '가상회사' 팀빌딩 회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직접 출근부를 찍고, 주간회의와 교육 등을 진행하며 실제 직장처럼 가상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독립출판물 <우리들의 첫 이야기책>을 펴냈다. 하반기에는 이모티콘을 제작하는 가상회사를 꾸려 활동 중이다. 김 센터장은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고, 이모티콘은 인터넷으로 작업할 수 있어 접근이 수월해 평가가 좋다"며 "결과물을 완성하며 성취감을 느꼈다는 청년이 많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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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 도중 고립·은둔청년들이 가상회사 활동으로 펴낸 독립출판물 '우리들의 첫 이야기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시형 기자 |
준영 씨는 일대일 상담을 가장 유익했던 경험으로 꼽았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끝나고 나면 다시 공허감이 밀려왔다"며 "상담을 통해 불안을 회피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됐고 은둔했던 원인도 찾았다"고 전했다. 현진 씨는 줌(Zoom)을 활용해 온라인 라디오 방송을 기획·운영하는 내부 일경험 프로그램으로 활력을 되찾았다.
센터는 외부 기관과 연계한 일경험 기회도 제공한다. 김 센터장은 "행사 기획사, 청소업체 등 지역 내 15곳과 협력해 청년들을 파견하고 있다"며 "이미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한 청년들이 작은 좌절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고립·은둔 청년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단체와 연결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울산청년미래센터는 '공동 생활형' 숙식 과정을 운영한다. 청년 2~3명이 약 28평 주택에서 두 달 간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다. 홍국진 고립은둔팀장은 "고립 청년들에게 낯선 이와 함께 먹고 자는 경험 자체가 큰 도전"이라며 "공동 생활만으로도 탈고립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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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터 1층 공유주방 앞 벽면에 고립·은둔청년들의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모습. /김시형 기자 |
은둔 기간이 길고 상처가 깊을수록 회복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성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방에서 나오는 것, 동네 친구를 사귀는 것, 아르바이트를 일정 기간 지속하는 것 모두 각자의 '사회 진입' 방식이다.
김 센터장은 "누군가에겐 친구 한 명을 만드는 게 목표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파트타임 경험이 목표가 될 수 있다"며 "청년마다 목표와 회복 속도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사회에 나섰다가 상처를 입고 재고립·재은둔으로 이어지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김 센터장은 "많은 청년들이 빨리 사회에서 '1인분' 몫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일경험을 제안하면 준비가 안 됐다며 두려움을 털어놓는다"며 "일반 청년과 같은 잣대가 아니라 느린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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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터 벽에 부착된 '리추얼 인증표'의 모습. 고립·은둔 청년들의 단계적 회복을 돕기 위한 생활 패턴 만들기에 활용된다./김시형 기자 |
그러나 정책은 여전히 '성과'와 '속도'를 요구한다. 김 센터장은 고립·은둔청년 정책의 핵심은 '속도 완화'와 '안전지대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회복 과정과 연결을 성과로 인정해야 하며, 실패와 재도전을 포용할 수 있는 정책적 안전지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