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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연휴 기간이 길었던 2022년 설과 2023년 추석에는 다른 해의 명절보다 유기·유실 동물 수가 증가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이새롬 기자 |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그러나 모두가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 1인 가구, 독거노인, 반려동물에게 추석은 외로움과 소외가 더해지는 시간이 되곤 한다. <더팩트>는 명절의 온기가 닿지 않는 '추석 사각지대'의 목소리를 3편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박스에 담긴 채 산에 버려져 있었어요.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는데, 성묘를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더라고요."
지난 설 명절, 친척들과 성묘하러 간 직장인 A 씨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박스 안에 담긴 채 방치돼 있던 것이다. 털 상태를 볼 때 분명 가정에서 키우던 반려견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유기된 것으로 추정했다. A 씨는 "이런 일이 내 주변에서도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며 "최근엔 아예 배를 타고 섬까지 가서 유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명절 연휴, 많은 이들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귀성길에 오르지만, 일부 반려동물에게는 명절이 오히려 외롭고 두려운 시간이 된다. 특히 연휴 기간이 길어질수록 유기 사례는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추석은 최대 10일간 이어지는 만큼, 유기 동물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연휴 기간이 길었던 2022년 설과 2023년 추석에는 다른 해의 명절보다 유기·유실 동물 수가 증가했다. 연휴 기간이 5일이었던 지난해 추석과 2021년 추석에는 각각 612마리, 583마리가 구조됐고, 연휴 기간이 4일이었던 2022년 추석에는 560마리가 버려진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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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동물보호법은 유기 행위에 대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추적이 어렵고 처벌 강도도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설 연휴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반려견과 함께 귀성길에 오르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박헌우 기자 |
현행 동물보호법은 유기 행위에 대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추적이 어렵고 처벌 강도도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는 "300만 원 이하 벌금이면 그것보다 더 낮게 처벌받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며 "인식칩도 안 하고 버리면 유기한 견주를 찾아 벌금을 물리기에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기 방식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집을 비우는 보호자들을 위한 애견 호텔이나 펫 케어 서비스들이 늘고 있지만, 오히려 이 공간들이 유기 장소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행위를 방지하고자,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물병원·애견호텔 등 동물위탁관리업체에 맡긴 반려동물을 계약 기한 이후에도 찾아가지 않는 경우, 명시적 유기 행위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유기 행위 처벌 강화 △보호자 책임 명확화 △동물 등록 방식 개선 △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골자로 한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도 동물 유기와 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개정안을 냈다. 현행 3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들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수차례 발의됐지만, 본격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의 무관심한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작년 내란 사태 이후 국회가 민생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며 "동물보호법은 늘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정치인들이 갈등 속에서도 할 일은 하면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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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에서는 동물보호법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기국회 내에는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이새롬 기자 |
정치권에서는 동물보호법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기국회 내에는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동물보호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민주당 소속 보좌진은 <더팩트>에 "동물보호법이 농림축산부 소관 법안이라 여태까지는 주로 농업 사법이나 민생 법안 위주로 하다 보니 (동물보호법) 진행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다"며 "필수농자재법하고 농지법하고 몇 개의 주요 법안을 먼저 다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18일 정조위 회의 때 한 민주당 의원이 동물 관련 복지 법안을 좀 논의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면서 "그래서 아마 정기국회때는 논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동물단체들은 반려동물 유기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반려동물 등록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조희경 대표는 "반려동물 등록제 개선이 필요하다. 유기동물 발생 시 보호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생체 인식형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며 "보호자를 끝까지 추적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분양하는 시점에 교육을 통해 적절한 양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동물 유기 시 어떤 처벌을 받는지 등 교육을 의무화해 보다 책임성 있는 분양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