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며 '북중러 신냉전 구도'를 과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왼쪽부터) 푸틴 대통령, 시 주석, 김 위원장. /베이징=AP. 뉴시스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66년 만의 북중러 정상 결집을 통한 신냉전 구도의 재편을 대외적으로 과시했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민복 대신 검은 정장에 금색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으로 나타난 김 위원장은 레드카펫을 밟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시 주석은 펑리위안 여사와 각국 대표들을 악수로 맞이했다. 김 위원장도 차례가 돌아오자 시 주석과 웃으며 악수했다. 시 주석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김 위원장의 6년 만 방중을 환영했다. 김 위원장의 악수 순서는 마지막 차례였던 푸틴 대통령 바로 앞이었다.

이후 김 위원장은 기념 촬영에서 시 주석 부부 왼쪽에 자리했고,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 오른쪽에 위치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이 역시 시 주석의 왼쪽에는 김 위원장이, 오른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서서 66년 만의 북중러 정상 결집을 과시했다.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찍힌 사진 한 장만으로도 김 위원장으로서는 최대 외교 성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전승절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성과를 거둔 것"이라며 "천안문에서 시 주석 바로 옆에 서는 건 선대 김일성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북중러 정상의 결집은 지난 1959년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 마오쩌둥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마오쩌둥 주석의 양 옆에는 호찌민 베트남 국가주석, 흐루쇼프 서기장이 섰다. 김일성 주석은 바로 옆에 서지 못했다.

국가정보원은 전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배경을 '한반도 정세 구도의 최적 카드'로 분석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 시 주석, 김 위원장이 3일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행사에 참석한 모습. /베이징=AP. 뉴시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한 장 만으로도 외교적 승리를 선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러 연대 강화가 반서방 연대 구축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시기도 공교롭다. 북한은 지난달 '김정은의 입'으로 통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통해 "우리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역 외교 무대"를 언급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한미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공조 체제가 굳건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이 결정됐고 북중러 정상까지 한 데 모였다.

전날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배경을 '한반도 정세 구도의 최적 카드'로 분석했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히며 △북중 관계 복원을 통한 대외 운신 폭 확대 △러시아 편중 외교 탈피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미국의 태도 변화 유인 등을 언급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하게 되면서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하게 됐다. 이날 김 위원장은 열병식 이후 전승절 기념 리셉션 행사장에 입장했는데, 각국 정상들과 소통할 것으로 보인다. 전승절 이후 김 위원장이 '우방국'과의 관계 도모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전날 베이징에 도착하면서 딸 주애와 동행했는데, 후계 구도를 공식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세 차례 방중에서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했지만 해외 일정에 주애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애는 이번 전승절 열병식에는 김 위원장과 함께 나타나진 않았지만 향후 현지 일정에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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