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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력 부풀리기' 의혹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지나친 감성적 호소 '역효과'…'잘못' 구체성 떨어져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2015년 8월, 홍영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고백했다. 친일파에 대한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친일 후손이라는 것만으로도 정치 사회적으로 매장감이었다. 이듬해 총선까지 앞두고 있었으니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가 친일 후손이라는 점을 아는 사람보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할아버지의 친일 행각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홍 의원의 조부인 홍종철 씨는 1930년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명단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친일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낙향해 후학을 양성했던 부친의 뒤를 이어 속죄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친일 후손으로서 책임과 그에 대한 사과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국민들 가슴 속 분노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기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실을 밝히며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손인 제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조부의 친일행적에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 피해를 보고 상처받은 모든 분께 거듭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도 평생, 민족정기사업에 더욱 힘을 바치겠다."
당시 홍 의원의 용기 있는 고백과 다짐에 시민단체와 여론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친일파 후손의 진솔한 반성과 참회하는 태도가 이례적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단체 등은 홍 의원의 지지를 공개 선언했었다. 이를 발판 삼아 3선 중진에 오른 데 이어 현재 4선 의원인 그는 독립운동가 지원 등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6년이 지난 홍 의원의 사과문을 다시 떠올린 계기가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사과가 어딘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 씨의 허위 이력 기재 의혹과 친일파 후손의 문제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렇더라도 이상하게 두 인물의 사과가 겹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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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26일 자신을 둘러싼 '경력 부풀리기' 의혹을 일부 인정하며 사과했다. 하지만 '맹탕' 사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남윤호 기자 |
김 씨는 지난 26일 자신을 둘러싼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작 김 씨는 자신을 둘러싼 허위 이력 기재 의혹과 거리가 먼 일들을 꺼냈다. "자신감이 넘치고 후배들에게 마음껏 베풀 줄 아는 그런 남자",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하며 늘 전화를 잊지 않았다", "결혼 후 어렵게 가진 아이를 잃었다" 등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사과문 전면에 채웠다.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왜 굳이 내밀한 가정사를 국민에게 알린 것인지.
국민은 '인간' 윤석열과 유산의 아픔보다는 김 씨가 직접 허위 이력 기재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6분 동안 사과문을 읽고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 한 채 현장을 떠났다. 김 씨는 같은 날 국민의힘 선대위가 내놓은 허위 이력 기재에 대한 설명자료로 갈음하려 했던 것일까.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일부 의혹을 인정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밝히지는 않았다.
더구나 각종 의혹에 대해 '부정확한 기재·표기'라는 해명은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다. 이력을 과장한 것은 '거짓'을 적은 것이다. 고의의 목적이 없다고 주장해도 허위 이력은 곧 가짜 이력이다. 심지어 김 씨의 말대로 몇몇 경력을 잘 보이기 위해 부풀렸다면 그건 '고의'라고 보기에도 충분하다. 그러나 김 씨와 국민의힘 선대위의 인식은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듯하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김 씨의 약속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여론이 이토록 싸늘한 것은 국민이 김 씨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치게 동정심을 유발했던 점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다'라고 명확히 했다면, 국민은 더 진솔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알맹이 없는 사과로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