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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뜨겁다. 하지만 그 담론의 무게만큼 심도있는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이선화 기자 |
'미묘한 시기' 정치권 기본소득 주장이 공허한 이유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좋아하는 교수님의 정치학 강의에서 들었던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로또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나도 언젠가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만, 한 나라의 체제가 유지된다는 내용이었다.
교수님은 만약 로또가 없다면 벌어진 계층 격차와 기득권 세력에 불만을 품은 일반인의 '혁명'이 일어나기 쉬워질 거라고 말했다. 주에 한 번 로또 5장과 연금복권을 구매하며 '삶의 낙'이라고 했던 동생의 말을 생각하면 그럴 듯도 했다. 하지만 괘씸하다. 경제는 어렵고, 고용은 축소됐으며, 물가는 오르는 우리 사회에서 '로또 당첨돼서 건물을 사고 싶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희망고문'이 될 수 있어서다.
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쏘아 올린 '기본소득' 논의가 뜨겁다. 코로나19 사태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의제다. 정치권은 진보·보수할 것 없이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민주당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언급했고,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강한 비판론을 제기했다. 언론은 정치권의 말을 종합해 온건파와 반대파로 분류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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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대권주자들 사이에선 '기본소득'을 언급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지만 정의당은 기본소득 논의가 찬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모습. /이새롬 기자 |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돼 있기도 하다. 사전은 기본소득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즉 노동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무조건성·개별성을 특징으로, 혹자는 '존재 가치에 부여하는 소득'이라고도 했다.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비롯한 복지제도 논의는 앞으로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선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기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기본소득 논의는 어쩐지 공허하다. 기본소득은 제도 자체가 기존 복지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부터 재원 마련 문제, 지급 형태와 방식, 사회적인 합의 등 논의해야 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일단 하고 보자'는 식으로 화두를 던지는 정치권의 화법은 그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포퓰리즘성 발언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한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진보정당 정의당은 오히려 신중한 입장이다. 정의당은 기본소득과 관련한 당론은 없지만, 현재 추진 중인 전 국민 고용보험이나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제도 강화와 3차 추경에서 이뤄질 재난기본소득을 통해서도 기본소득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찬반 문제'로 귀결되는 데 아쉬움이 있다"면서 "정의당은 입장이 없다기보다는 제도 자체의 실효성과 내용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란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정치권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희망을 줄 수도, 허망함을 줄 수도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에게 주어진 발언권은 희망고문에 사고 또 사는 로또가 아니다. 국민은 실현이 어려운 행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투표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moon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