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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국회 임기 약 한 달을 남겨둔 여야 국회는 오거돈(사진) 전 부산시장 성추문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여당이 총선을 의식해 덮었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최악의 20대 국회, 마지막까지 정쟁만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만약 ㅇㅇ했다면 ㅇㅇ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만약'이라고 가정한 후 이런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요즘 '만약'이라는 그 전제가 있었다면 과연 결과가 달라졌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의 전제가 '부정(不正)'이었다면 결과는 뒤집혀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만약'이라는 전제는 자기 위로를 위한 수단과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야 정치권도 요즘 '만약'을 전제로 입씨름 중이다. 코로나19로 전 국민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때에 국회 본연의 역할보다는 이 '만약'이라는 가정을 놓고 정쟁 중이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3일 여직원 성추행을 이유로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 시기를 문제 삼고 있다. 오 전 시장이 성추행을 저지른 날이 지난 7일인데, 총선이 끝난 후 사퇴한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오 전 시장의 성추행을 알았지만,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사퇴 시기를 총선 이후로 정했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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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가운데)와 곽상도 더불어민주당 성범죄 진상조사단 단장(왼쪽) 등이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
통합당은 오 전 시장이 피해 여성과 사퇴 각서 공증을 문 대통령이 만든 법무법인 부산이고, 현 대표인 정재성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며, 오거돈 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임을 이유로 들었다. 이른바 오 전 시장과 문 대통령 주변인과의 특수관계다.
그렇다면 '만약'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총선 전에 공개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통합당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만약을 전제로 해도 영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과를 크게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통합당은 아마도 오 전 시장 사건이 총선 당시 불거졌다면 부산 등 일부지역에서 지금보다 몇 석은 더 가져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통합당의 이런 만약은 선거를 뒤집는 반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본다.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도 27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성추행 사건이 총선 전에 밝혀졌다 해도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만, 부산 민심에는 큰 영향을 줬을 거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부산지역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통합당이 가져갔지만, 그래도 적은 표차로 낙선한 후보들 같은 경우에는 억울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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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야는 서로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새다. 국회 본회의장에 텅빈 의원석. /더팩트 DB |
민주당은 통합당의 의혹 제기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발 빠르게 오 전 시장을 27일 제명 처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사건과 이후 불거진 성추문으로 '더불어미투당'이라는 오명을 쓴 민주당이다. 총선에 압승한 민주당은 오 전 시장 문제를 길게 끌고 갈 경우 당에 미칠 영향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민주당이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총선 당시 알았다면? 승리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민주당은 총선 중 이런 사실을 밝히고 제명 처리했을까. 고민에 또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통합당의 주장처럼 민주당이 오 전 시장의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선거 일정에 맞춰 사퇴시기를 조정했다면 논란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라면 민주당은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인 여성 인권보다 총선 승리라는 목적을 우선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몰랐다'는 주장을 믿어야겠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는 명확한 해명이 있었으면 한다.
정치권이 오 전 시장의 사퇴시기를 놓고 '알았을 것' '알지 못했다' 논쟁을 벌이는 지금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인 여성이다. 피해 여성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데도 정쟁의 도구로 삼는 한심한 정치권이다. 약 한 달의 임기를 남겨둔 20대 국회의 추태를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만약 당파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정당 해산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국회가 좀 달라질까?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