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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집회에 시민 100만 명이 몰린 후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 '탄핵론'이 제기되고 있다./남용희 인턴기자 |
[더팩트 | 서민지 기자] 100만 촛불을 두 눈으로 본 정치권.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만을 기다리기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든걸까. 12일 광화문 광장의 '성난 민심'을 확인한 여야가 그동안 주저했던 '탄핵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특히 그동안 '역풍'을 우려해 공개 거론을 하지 않았던 야당은 이날 새누리당 비박계에서 본격적으로 탄핵론을 꺼내면서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13일 비박계가 주도한 비상시국회의에서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면서 "사태가 심각하고 수습이 어려운 이유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께서 헌법 위배의 몸통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은 이미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적 신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 권위를 모두 상실해 더 이상 정상적으로 국정을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현재의 국정 마비 상황을 하루 속히, 질서 있게 수습할 헌정적 절차는 탄핵밖에 없다"고 여러 차례 '탄핵의 필요성과 취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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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13일 비상시국회의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문병희 기자 |
새누리당 의원이 박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한 건 처음이며, 새누리당의 '잠룡'이자 비박계 수장인 김 전 대표의 말이기에 무게감을 더한다.
나경원 의원도 "야당이 지금 중구난방, 주먹구구의 이야기하고 있다. 하야, 2선 후퇴, 탄핵 등 야당이 주장을 확실히 해야 하고 헌법적 질서 절차 안에서 요구해야 한다"면서 "헌법상 탄핵요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의견 모아서 탄핵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의 말을 해석하면 야당이 탄핵 카드를 꺼내기만 하면 함께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야3당에서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선 지금까지와 다른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야당은 새누리당의 동의가 없는 한 탄핵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발언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 발언이 나오면서 중진급 의원들도 '본격 행동 개시'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대통령께서 마지막 하실 일은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국민이 다치기 전에, 평화롭고 순조롭게 순리대로 정국 정상화를 위해 결자해지하는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손으로 헌법이 대통령께 드린 권한을 돌려받는 절차가 남았을 뿐"이라며 '탄핵'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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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우상호 원내대표(왼쪽)와 추미애 당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임세준 인턴기자 |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하야라는 국민의 무거운 요구를 귓전에 흘리면서 제1야당인 우리가 언제까지나 2선 후퇴만 주장해야 할 것인지 이제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말했으며,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제 국회가 국민의 명령에 따라 안정적 하야,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국회법에 따라 비상시국전원위원회 개최를 요구한다"고 제안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도 "오는 19일 정도로 예정된 검찰의 (최순실씨) 공소장은 중대변수다. 교사범·공동정범으로서 대통령의 범죄가 적시된다면 국회는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탄핵이라는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책무를 안게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도 이날 오후 5시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 추진을 놓고 갑론을박 했다. 일부 당 소속 위원들은 "당장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재편 여부 등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론을 펼쳤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헌법이 정한 국회의 권능인데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면서 "대통령이 국민 뜻을 외면하고 마이웨이할 때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탄핵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성엽 사무총장도 "여야 대표가 박 대통령을 조속히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고 촉구해 질서 있는 퇴진의 길로 이끌어가야 한다"며 "만약 끝내 따르지 않는다면 더이상 지체 없이 국정조사와 동시에 불가피하게 대통령 탄핵 절차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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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9번출구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을 독려하는 박지원(오른쪽)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남윤호 기자 |
반면 박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 내) 비박도 접촉하고 친박도 접촉해 봤지만 탄핵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선 200명 이상의 표를 확보해야 한다"며 "탄핵은 상정했다가 부결돼버리면 다 끝나는 것이다. 그러면 박 대통령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탄핵 카드를 불쑥 했다가 만약에 표 확보가 안 되면 끝나버린다"며 "그러니까 새누리당의 변동을 보자는 것"이라고 새누리당의 분당 등 재편과정을 보면서 탄핵 추진 여부를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의당도 '탄핵'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심상정 상임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가 가진 탄핵소추권의 진정한 행사권자는 국민이기 때문에 대통령 탄핵소추는 신중하고 엄정해야 한다"면서 "실제 탄핵소추 발의에 앞서 법적·정치적 제반 사항을 준비 및 점검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검토위원회'를 국회의장 직속기구로 설치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치권에서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이나 탄핵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2선 퇴진이나 하야 등은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박 대통령이 어제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고,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있다면서도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 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설명했다. 어떻게든 국정을 끝까지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헌법상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요건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최소 200명의 의원들이 찬성해야 한다. 무소속까지 모두 합친 야당 의석이 171석에 그쳐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려면 최소한 29명의 여당 의원들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한편 검찰은 15일 이후 박 대통령을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박 대통령 조사에서 최 씨의 비위를 묵인했거나 도움을 주도록 지시했거나 관련 보고를 받았는지 등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적용 법리를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은 헌법 제84조에 따라 내란·외환의 죄가 아니면 재임 기간 중 불소추 특권이 있다. 혐의가 발견된다 해도 '이론상의 피의자'이지만, 박 대통령이 받는 정치적 부담감은 한층 커진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