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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스토리] 정호준 "천체학과 물리학을 좋아한 과학도" Only

선거 베이비로 불렸던 정호준 당선자는 19대 국회에서 3세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 이새롬 기자
'선거 베이비'로 불렸던 정호준 당선자는 19대 국회에서 '3세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 이새롬 기자

[소미연 기자] 민주통합당 정호준 당선자에게 '정치'란 운명과 같았다. 1972년 2월 서울 중구 필동에서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릴 당시 정 당선자의 할아버지인 고 정일형 박사는 김대중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장을 하고 있었다. 선거를 치르는 중에 태어나 '선거 베이비'로 불렸다.

정 당선자는 1977년 아버지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3세 정치인'으로 다시 불렸다. 그는 "어린 시절, 호준이도 국회의원 돼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면서도 정작 본인은 "정치하기가 싫었다"고 털어놨다. 어린 정호준이 바라본 정치인의 삶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이다.

야당 정치를 오래한 할아버지 정 박사는 1977년 '명동 구국선언 사건'에 연루돼 국회에서 제명됐다. 함께 구국선언에 참여한 할머니 이태영 박사도 변호사직을 박탈당했다. 사실 이 박사는 '여성 고등고시 1호 합격자'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의 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아버지 정 고문의 정치 인생도 순탄치 않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정 고문은 도피생활을 했다. 당시 어머니가 울면서 아버지와 통화하던 모습을 정 당선자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정 당선자의 초등학생 시절 모습. 할아버지 정일형 박사와 할머니 이태영 박사가 앉아있고, 뒤에 아버지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어머니 김덕신 여사가 나란히 서 있다. 아래 좌측 사진은 정 당선자의 돌 기념사진이다. / 정호준 당선자 제공
정 당선자의 초등학생 시절 모습. 할아버지 정일형 박사와 할머니 이태영 박사가 앉아있고, 뒤에 아버지 정대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어머니 김덕신 여사가 나란히 서 있다. 아래 좌측 사진은 정 당선자의 돌 기념사진이다. / 정호준 당선자 제공

무엇보다 어머니의 염산 테러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선거를 앞둔 아버지가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자 소위 정치깡패가 염산을 뿌린 것. 당시 어머니가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염산을 막으면서 입고 있었던 오리털 잠바를 까맣게 태웠다. 이를 알 리가 없는 정 당선자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으나 어머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정 당선자는 정치에 회의를 느꼈다. 그는 "우리 어머니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우리 아버지는 왜 집에도 못 들어오고 도망 다녀야 하는지, 이런 물음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면서 정치가 싫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 당선자가 "정치인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 당선자는 학창시절 정치보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천체학과 물리학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기도 했다. 하지만 전공은 당시 붐을 일으켰던 IT 분야로 정했다. 한양대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정 당선자는 뉴욕대 그래픽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테크놀러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세계적 마케팅 기업인 영&레비캠(Young&Rebicam) 뉴욕 지사에서 온라인 마케팅 기획책임자로 근무했다. 국내에 들어와선 삼성전자 전략기획파트에서 일하기도 했다. 모두가 훗날 CEO로 성공할 자신의 미래를 위한 행보였다.

정 당선자의 대학시절과 군복무 시절의 모습. 아래 우측 사진은 정 당선자가 인터뷰 도중 취재진에게 보여준 카카오스토리. / 정호준 당선자 제공
정 당선자의 대학시절과 군복무 시절의 모습. 아래 우측 사진은 정 당선자가 인터뷰 도중 취재진에게 보여준 카카오스토리. / 정호준 당선자 제공

그러나 정 당선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는 "국회의원 아들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솔직히 보이지 않는 대우가 있다. 처음엔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된다"면서 "문제는 그게 학급 내 차별대우로 부각됐고, 군대에서조차도 빨간딱지를 붙여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직장에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인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직장 동료 또는 직장 후배가 아닌 '정대철의 아들'로 먼저 소개했다. 당시를 떠올린 정 당선자는 "누구 아들이라고 알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고 토로했다.

사실 연애도 쉽지 않았다. 처음 교제를 시작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가도 어느 순간 '정치 명문가'의 장남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정 당선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세상이 넓으니까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것 같다. 이후 만남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부모가 반대하기 시작하고, 이런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시간 동안 '정일형의 손자'이자 '정대철 아들'로 살아온 탓에 '인간 정호준'은 자유롭지 못했다"면서도 아버지가 밟아온 그 길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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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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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24 12:09 입력 : 2012.05.24 12: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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