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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서방파 보스에서 물러났지만 김태촌은 여전히 폭력조직계의 큰형님으로 불린다. / 이호균 기자 |
[소미연 기자] 국내 주먹계의 대부 김태촌은 1970~1980년대 ‘범서방파’로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3대 패밀리 시대’를 열었다. 그 시절 3대 패밀리는 국내 조직폭력의 상징과 다름없었다.
세 두목 중 가장 먼저 무대에서 사라진 사람은 OB파의 이동재였다. 1988년 양은이파 방계조직인 순천시민파로부터 온몸을 난자당한 이후 주먹계를 떠났다는 전언이다. 그의 퇴장으로 3대 패밀리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김씨와 조씨는 교도소를 오가며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김씨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난입 및 각목사건을 통해서다. 당시 이철승 의원의 사주를 받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총재가 되는 것을 폭력으로 막았다. 김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신민당 중앙당 노동국 차장으로 발탁됐다. 공천까지 약속받았지만 김씨는 “의리 없는 정치권은 싫다”면서 주먹계로 다시 돌아왔다.
김씨는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을 통해 또 한 번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김씨의 부하들이 뉴송도호텔 사장 황모씨를 폭행한 이 사건은 당시 서울고검 소속 박모 부장검사의 이권과 관련된 청부폭력사건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됐다. 김씨는 징역 5년을 살았고, 박 검사는 옷을 벗었다.
이후 1990년 5월 김씨는 ‘신우회’라는 범죄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만큼 종교 모임이라는 김씨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징역 10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1997년 공문서위조교사 혐의가 덧붙여져 징역은 1년6개월이 더 늘어났다. 그때 그를 추가기소했던 검사가 바로 2007년 권상우 협박 사건을 수사한 박충근 검사(현 서산지청장)다.
권상우 협박 혐의를 부인하던 김씨는 끝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001년 4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수감 중이던 진주교도소에서 전화사용과 흡연 등의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당시 보안과장에게 1200여만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김씨가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은 무려 34년이다. 올해 63세인 김씨는 인생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셈이다.
2009년 11월 만기 출소한 김씨는 현재 대구 협박 사건으로 대구지검의 수사 선상에 오른 상태다. 물론 김씨는 해당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폐암 수술 후유증을 겪어온 김씨는 다음달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에 집중할 계획이다.
[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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