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21)] 사대천왕 강민
  • 손현석 기자
  • 입력: 2011.10.27 16:51 / 수정: 2011.10.27 16:51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대천왕 멤버였던 강민은 힙합 1세대로 활동한 경력도 있고, 필자하고도 단짝이었던 댄서다.

춤을 잘 췄지만 양군(양현석) 패밀리 시절엔 빛을 보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태지와 아이들’멤버 이주노 연습실에서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강민은 이주노 동생이자 댄서로서 활동이 점점 부각됐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곡 ‘컴백홈’ 백업 활동을 시작으로 그의 유명세는 더 늘었다. 댄서 출신에서 ‘영턱스클럽’으로 데뷔할 예비멤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입대를 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는 군 제대 후 필자와 다시 만나 춤을 추기 시작했고, 피나는 연습을 했다. 현존하는 댄서들을 따라잡기 위해 방안이 필요했던 그는 모레주머니를 착용하고 새벽 연습도 강행했다. 댄스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결실로 이주노의 댄스 팩토리에 제작 참여를 했다. 단기간에 댄스 필을 찾고 후배들보다 더 뛰어난 춤을 선보여 2세대 힙합퍼로서 자격은 충분히 있고도 남는다.

강민은 현재는 댄스학원을 운영 중이다. 춤에 관한 한 철학이 뚜렷한 훌륭한 댄서 중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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