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18)] 힙합문화의 아이콘 ‘데프’
입력: 2011.10.18 14:47 / 수정: 2011.10.18 14:47

▲데프컴퍼니의 ‘데프댄스스쿨’ 로고.
▲데프컴퍼니의 ‘데프댄스스쿨’ 로고.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데프컴퍼니(이하 데프)를 아는가? 지금은 보컬도 가르치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힙합전문댄스 학원이다. 그래서 데프는 타 학원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데프를 세운 양선규 대표는 댄서 1세대들과의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다 힙합 마인드도 상당하다. 예전의 한국 힙합계는 교육적인 체계가 부족했다. 말 그대로 리얼 스트리트댄스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춤의 이론도 제대로 없고 당시 댄서들에겐 ‘가오’(허세)가 있어서 절대로 쉽게 춤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춤 배우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런 실태를 뼈저리게 느껴온 양 대표는 후배 양성을 위해 교육적인 체계를 잡아나갔다. 걸스 힙합, 커버댄스 창시도 그의 작품으로 1990년 중후반 언더그라운드의 산물이었던 힙합 댄스를 대중화시킨 1등 공신이 됐다.

또한 데프는 외국댄서들을 초빙해 초청강의 및 댄스공연을 주최와 후원을 도맡았다. 데프 ‘댄스 워크숍’ 게스트는 최상의 수준이었다. 일본댄서에는 ‘스테조’(힙합) ‘히로’(하우스), 미국 댄서로는 ‘엘리트 포스’ 등이 있고, 정말 초청하기 힘들다는 부가루팝 창시자 일렉트릭 부가루스의 멤버 샘까지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다.

이밖에 데프는 공연의 질을 향상시킨 환상의 퍼포먼스까지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 댄스문화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어쩌면 양 대표의 데프가 지금의 한류 열풍에 가장 큰 디딤돌을 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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