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19)] 1990년대 중반 춤의 세대교체
입력: 2011.10.20 14:40 / 수정: 2011.10.20 14:40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양현석(이하 양군)의 시대였다.

하지만 양군이 음반 제작자로 변신하면서 힙합 댄스계는 후배들이 이어받았다.

어쨌든 그의 영향으로 힙합 댄스는 필과 스킬은 물론 스피드와 다이나믹함도 향상됐다. 이후 많은 후배 댄서들이 등장했지만 주목할 인물들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백업 출신 안무가 김호진, 신현근, YG패밀리 안무가 오용주가 바로 그들이다. (부끄럽지만 글쓴이도 포함된다.)

김호진과 신현근은 스텝 위주의 하우스 댄스를 했고, 글쓴이와 오용주는 팝과 필 위주의 힙합 댄스를 했다. 흔히 ‘먹통댄스’라고도 불렀다.

이들의 전성기 때에는 많은 아티스트들도 영향을 받았다. 구피, 영턱스클럽, 유피, HOT, 젝스키스, 지누션, DJ DOC 등등.

많은 뮤지션들의 안무가 활동을 하면서 이들의 존재감은 커졌다. 힙합 1세대 양군의 전성기 이후 제 2의 댄스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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