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文개혁'言'⑨ 경제-上] '수백조'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풀어라
입력: 2017.06.26 08:33 / 수정: 2017.07.05 10:46
기업정보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사의 유보금은 3월 말 현재 59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정보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사의 유보금은 3월 말 현재 59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을 넘어섰다. 1기 내각 인선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재까지 보여준 '파격', '소통'에 국민들은 환호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200개가 넘는 공약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공약의 핵심 키워드는 '개혁', '국민'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더팩트>는 ▲경제 ▲언론 ▲방송 ▲사법 ▲소비자 ▲여성 등 6대 분야를 선정, 관련 분야 시민단체, 학계, 직능단체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연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에 대한 전망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대기업이 수백조 원 규모의 사내유보금 곳간에 쌓아놓고 아르바이트비를 떼먹는 일을 없게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5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서 한 말이다. '재벌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문 대통령이 당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4년에도 "대기업이 보유 중인 사내유보금의 1%만 풀어도 월 200만원을 주는 청년 일자리 30만개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활성화 대책의 핵심으로 재벌 개혁과 '일자리 창출'을 꼽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푸는 것으로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중 하나인 대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한 노동계, 재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지난 12일 기업정보사이트 '재벌닷컴'이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사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상장사의 유보금은 3월 말 현재 691조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정부 예산규모(400조7000억)보다 약 72.5% 많은 액수다.

여기서 유보금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여 누적된 이익 가운데 세금과 배당 등으로 유출된 금액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금액이다. 일반적으로 재무상태표상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고 남은 '이익잉여금과' 자본거래에서 생긴 '자본잉여금'을 합친 말이다. 사업 확장에 따른 토지와 기계설비 등과 지적 재산권 등을 포괄하고 있다.

◆ 노동계·정치권 일각 '유보금=여윳돈'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가진 건설현장의 불법 하도급 근절과 내국인 건설노동자 고용 대책을 요구하는 상경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병희 기자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가진 '건설현장의 불법 하도급 근절과 내국인 건설노동자 고용 대책을 요구'하는 상경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병희 기자

정치권과 노동계는 대기업의 유보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보금을 풀어 고용을 확대하는 등 대기업이 공익과 사회공헌에 앞장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노동계는 대기업들이 자산만 축적할 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자센터 소장은 22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대기업들이 유보금으로 재투자를 했다면 수백조 원이 쌓일 리가 없지 않느냐"며 "전체적으로 대기업은 생산 재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여지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도 취약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대기업들이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고 인건비 절감을 통한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대기업 집단은 도덕적 해이나 사회적 행보와 관련해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유보금 총액은 매년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노동계는 유보금이 늘었다는 것은 대기업들이 영업활동으로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투자와 고용 등으로 확대하지 않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30대 그룹 상장사의 유보금 총액은 ▲2012년 말 515조4000억원 ▲2013년 말 557조7000억원 ▲2014년 말 602조4000억원 ▲2015년 말 655조원 ▲지난해 말 681조원 등이다. ▲올해 3월 말 현재 역대 최대치인 691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7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같은 기준 삼성 상장사들의 유보금은 219조5000억 원으로 2012년 말보다 65조원(42%)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그룹의 유보금은 43조4000억원(55.5%), SK그룹과 LG그룹은 각각 28조1000억 원(66.2%)과 9조9000억 원(25.5%) 증가했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에서도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로는 일자리 창출이 한계가 있어 기업의 유보금을 풀어 고용 창출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일각에서 일자리 창출의 주체가 정부인지 기업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재벌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삼성·현대차·SK·LG그룹은 수십조원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팩트 DB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재벌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삼성·현대차·SK·LG그룹은 수십조원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팩트 DB

◆ 재계, 유보금 현금 아냐…전문가 "유보금 증가는 필연"

반면 재계는 유보금에 대해 '곳간에 쌓아놓은 현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언제든지 꺼낼 쓸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투자나 고용할 여력이 되는데도 돈을 움켜쥐고 풀지 않는다는 주장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은 유보금 가운데 활용 가능한 자금의 비중은 10~15% 정도라고 했다.

상반된 견해는 관점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치킨집 사장인 A 씨는 연 10억원을 벌어 7000만원을 시설장비에 투자했다. 남은 3000만원과 합쳐 유보금은 10억원이지만 실제 남은 현금은 3000만원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매출액에서 매출원가, 판관비, 영업외 손익, 법인세, 배당금 등을 제외한 이익잉여금, 자본잉여금 등을 사내에 축적한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여기에는 기업이 사내에 축적한 현금 외에도 기계설비, 공장, 토지, 연구개발 등에 사용된 금액도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 중국, 일본과 비교했을 때에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다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에 따르면 2015년 4개국 시가총액 500대 기업의 현금흐름을 영업활동, 투자활동, 재무활동으로 비교한 결과 영업활동 대비 투자활동의 현금흐름 총액 비율이 79.9%로 중국 92.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미국은 77.5%, 일본은 69.1% 수준이었다.

전문가들도 재계의 항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윤경 한경연 경영분석팀장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분석 보고서(사내유보금의 의미와 정책적 시사점)에 따르면 순이익을 초과한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유보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며 "유보금과 투자는 1:1로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사내유보금은 현금, 지분투자, 실물투자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투자와 유보금이 서로 배타적이지도 않다"며 "유보금의 증가는 기업의 수익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고, 자본으로 편입되지 않는 한 과거의 유보금에 축적된다"고 언급했다.

사내유보금의 말을 그대로 해석해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인식하는 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더팩트 DB
사내유보금의 말을 그대로 해석해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인식하는 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더팩트 DB

◆ 유보금, 어감(語感)오해…단어 변경 주장도

'유보'와 '금(金)'이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해 돈을 보존한다는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현금성 자산을 쌓아 '금고' 속에 채운다는 것은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김윤경 팀장은 22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단어에서 오는 어감이 기업이 내부에 쌓아 놓은 현금으로 인식하기 쉽다"며 "정책적으로 바르게 사용해야 함에도 잘못 알려진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사내유보금이라는 단어는 다른 나라에서도 없는 명칭이고, 법적·회계적 용어도 아니기에 5~6년 넘게 오해가 생기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정책제안의 기반이 되고 있음에도 유보금의 실제 의미와 다르게 인용되고 있으므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명칭 때문에 오해와 논쟁이 지속해왔다는 이유에서 한경연은 지난해 대체 용어를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한경연은 '창출자본' '세후재투자자본' '사내재투자금'을 대체 용어로 제시했다. 외부 차입 등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이 벌어서 형성된 자본으로 종국적으로 투자 등에 활용되는 자본이란 뜻이다.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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