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WCA연합회 이명혜 회장은 16일 오후 서울 중구 YWCA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여성 일자리의 질적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국가보육책임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출산과 육아는 부모와 사회, 그리고 국가 모두의 책임입니다."
40년간 여성 분야에서 활동해온 이명혜(70) 한국YWCA연합회 회장은 "맞벌이 시대는 왔지만 맞돌봄 시대는 따라오지 않았다"며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진단했다. 이 회장은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노동 정책을 개혁하기 위해 "육아야 말로 국가가 지원하는 완전한 사회책임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남녀동수 내각 실현 △남녀임금격차 완화 △여성경력단절해소 △일·가족·생활 균형을 위한 국가보육책임 △ 젠더폭력방지 등 6개 핵심 정책을 약속했다. 창립 95주년을 맞은 YWCA는 여성단체의 한 축으로서 19대 대선 기간 문 대통령을 비롯해 각 대선후보들에게 이 같은 정책과제를 제안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도 여성의 고용확대를 위한 여러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비정규직 확대, 남녀임금 격차 등 질적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란 평가를 받는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지난 16일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 잡은 한국YWCA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기회는 평등하고 그 과정은 공정할 것"이란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결국 국가보육책임을 비롯한 성평등 정책 실현은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게 이 회장의 견해다.
YWCA는 일제 강점기인 1922년 당시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 선생이 창설한 이후, 여성인권운동, 소비자운동, 돌봄운동, 환경운동,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왔다. YWCA 95년의 역사는 여성운동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전국 52개 지역YWCA에서 10만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 "여성 일자리 양적 확대만 치중…'일·육아 갈림길'"
YWCA는 일제 강점기 1922년 창립 이후 여성인권운동,소비자운동, 돌봄운동, 환경운동,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왔다. 이 회장의 뒤로 사무실 벽면에 걸린 역대 회장들의 사진./남용희 기자 |
오후 3시, 이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서자 벽면에 줄지어 걸린 흑백사진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YWCA를 설립한 김활란·김필례 등 역대 회장들의 얼굴이 지난 역사를 말하는 듯했다. 1977년 유신 정권과 산업화 과정을 겪던 시기, 마산 출신의 이 회장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마산YWCA 간사를 맡으며 첫 여성운동에 발을 들였다. 이후 한국YWCA연합회 위원(1989)과 서울YWCA 위원(1994), 한국YWCA연합회 후원회 이사(2009)·제1부회장(2014) 등 주요 임원을 지냈고, 지난해 2월 임기 2년의 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회장은 40년 전을 떠올리며 "기억에 남는 일이 당시 산업화 시대라 여성들을 위한 직업개발 프로그램으로 도배공 훈련을 무료로 했다. 베테랑 남성 도배공을 초빙해 여성들과 같이 배우면서 일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도배공을 양성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40년이 흐른 2017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 4월 기준 53%로 나타나 1999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곧 여성고용 확대의 청신호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 회장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양적확대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 경제활동 참가율 76.1%에 크게 못 미치고,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이 80%에 이르는 스웨덴이나 국내총생산 규모가 우리와 비슷한 캐나다의 74.2%보다 턱없이 낮다. 또 2005년 처음으로 50%대를 넘었으나 사실상 10년 넘게 정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 고용의 현주소는 비정규직 확대와 남녀임금격차 등에서 드러난다고 이 회장은 지적했다.
"일하는 여성의 53.8%가 비정규직입니다. 여기에 성별을 이유로 임금차별까지 겪고 있습니다. 2014년 우리나라 성별임금격차는 36.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15년째 1등입니다.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35.8% 수준입니다."
이 회장은 여성 고용의 현주소는 비정규직 확대와 남녀임금격차 등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여성 정책과 생명평화 활동 등을 담은 YWCA 발간물. |
그러면서 이 회장은 "역대 정부가 제시한 여성 일자리 정책은 대체로 돌봄노동 관련 사회서비스에 몰려 있어, 당장 취업은 쉽지만 임금수준이나 근무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후 고용상 성차별은 완화됐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비정규직 확대, 성별 직업분리현상 등의 불안한 일자리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의 지적대로, 많은 여성들은 '일과 육아'의 갈림길에 선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비중은 26.5%(2013년)에서 38.3%(2016년)로 11.8%포인트 늘었다. 그 뒤를 △가족구성원 돌봄(4.2%→12.9%) △미취학자녀양육(6.4%→6.9%) △취학자녀교육(1.1%→1.5%) 등이 이었다.
이 회장은 "2015년 조사에서 직장에 다니던 여성의 44%가 경력단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가운데 30대 경력단절 비중이 가장 높다. 이유는 육아부담이다.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맞벌이 가구 여성의 주된 가사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12분인데 남성은 18분에 그친다"며 육아의 몫을 고스란히 여성이 짊어진 현실을 국가가 나서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11%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 같은 공교육 확대, 부부 출산휴가 의무제, 부부 육아휴직 의무활당제 등을 제안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슈퍼우먼 방지법' 실현 등을 제언했다.
◆ "승진·보직 유리천장 여전…여성 대표성 확대 필요"
이명혜 회장(오른쪽)은 "우리나라 여성이 각종 고시와 입시에서 수석을 휩쓴 지 오래지만 취업과 승진 등에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남용희 기자 |
여성들의 불안한 일자리 이면엔 '유리천장' 문제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여성이 각종 고시와 입시에서 수석을 휩쓴 지 오래됐으나 취업, 승진에서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이 회장은 지적했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합격자의 여성은 39.6%, 5급 행정고시는 41.4%나 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은 뚝 떨어집니다. 중앙행정기관 고위직 여성은 13.5%, 고위공무원단 여성은 5.6%에 불과했습니다. 민간기업의 유리천장은 더 두껍습니다. 10대 그룹 임원의 여성 비율은 2.4%로, 프랑스 37.6%, 스위덴 35.9%에 비해 한참 낮습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간 여성의 일자리가 양적확대에 치중해왔다면, 이제부터는 기회균등을 위한 질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성대표성 확대'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여성활동제, 공공부문 여성채용비율 목표제처럼 여성이 진입하지 못한 분야에 여성비율을 할당하는 방안이다.
이 회장은 "저임금, 고된 노동, 불안안 일자리를 되풀이하면서 승진이나 보직 등에서 유리천장, 비여성친화적 노동환경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평가제도의 공정성이 재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여성 인선을 환영했다. "최초의 여성인사(조현옥) 수석과 외교부 장관(강경화) 인선과 여성 여가부 장관(정현백) 발탁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적극적인 여성중용이 남녀동수 내각 실현, 여성국회의원 비율 30% 법제화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다만 "'성평등' 관점이 빠진 인사원칙과 검증기준은 아쉽다. 주요인물들의 성차별 인식과 여성 비하 언사가 잇따르고 있고, 여성장관 30%는 적극 추진하면서 여성차관 30%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고위직에 오를 만한 여성 인재풀이 적다는 이유를 꼽는데, 유리천장의 현실이다. 더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여성 고위직 확대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해결 약속, 꼭 지켰으면"
이명혜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 정책 과제와 함께 위안부 재협상의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남용희 기자 |
이 회장은 문 대통령이 공언한 핵심 6개 과제와 함께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전후 '2015년 12월 18일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협상'의 재협상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 왔다.
"올해로 창립 95주년을 맞은 YWCA는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참혹한 폭력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여성 인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여성 평화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와 재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탈핵공약' 이행도 이 회장은 촉구했다. 그는 "성평등은 민주주의의 완성이고, 성평등한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라며 "다음 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는 길은 탈핵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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