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文개혁'言'⑦ 소비자-上] '사후약방문' 소비자 정책, '선제적' 조치 필요
입력: 2017.06.23 09:59 / 수정: 2017.07.05 10:45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소비자 권리 확대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발표한 소비자정책 독립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정한 기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소비자 권리 확대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발표한 '소비자정책 독립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정한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을 넘어섰다. 1기 내각 인선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재까지 보여준 '파격', '소통'에 국민들은 환호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200개가 넘는 공약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공약의 핵심 키워드는 '개혁', '국민'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더팩트>는 ▲경제 ▲언론 ▲방송 ▲사법 ▲소비자 ▲여성 등 6대 분야를 선정, 관련 분야 시민단체, 학계, 직능단체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제언을 통해 시대적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연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에 대한 전망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변동진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이케아 서랍장 리콜 사건….'

누구나 알 만한 대표적 소비자 권리 침해 사례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소비자 권리 확대를 위한 공약을 내놨다. △소비자정책 독립기구 설치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법안 계류 중)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 폐지 등이 핵심 내용이다.

문 대통령이 이 같은 소비자 권리 확대 공약을 내놓은 건 그동안 기업들이 소비자 권리를 철저히 외면했고,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안방의 세월호'로 불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이 지금껏 소비자 권리 침해에 대한 피해보상은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았다. 소비자 권리 피해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검찰 수사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이 지난 4월 27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검찰 수사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이 지난 4월 27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도 미비로 피해자 분류도 못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는 검찰 수사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1994년 이후 무려 18년간 아무 규제 없이 팔리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질병 피해 신고는 5615명이며, 이 가운데 1195명이 사망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1위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는 사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자체 조사결과를 내밀며 책임을 회피했다.

앞서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2012~2013년)를 통해 '영유아와 산모가 폐손상으로 사망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옥시 측은 조명행 서울대학교 교수를 매수해 회사 측에 유리하도록 보고서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조 교수의 보고서 조작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더구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티아졸리논(CMIT·MIT)'를 생산하는 SK케미칼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8월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심의절차를 종료하면서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애초 공정위 심사관은 "애경·SK케미칼·이마트 등이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제품라벨 등에 주 성분명 및 주 성분이 독성 물질이란 점을 은폐·누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3사의 행위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정위원들은 "CMIT·MIT의 유해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조·판매사 손을 들어줬다. 환경부가 2012년 CMIT·MIT를 유독물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쥐 실험을 통해 발표한 "CMIT·MIT 가습기살균제에선 폐 손상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 때문에 22종의 가습기 살균제 중 4종(옥시·롯데마트 와이즐렉·홈플러스·세퓨)의 제조·판매 책임자에 대해서만 검찰 수사가 진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 보상은 제대로 됐을까. 정부가 건강 피해 정도에 따라 1~4단계로 나눠 보상을 취했지만, 3·4등급은 피해자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1·2단계 판정자는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3·4단계 판정자들은 사망이나 중증 질환에도 지원에서 배제돼왔다. 지난달 말 기준 1·2단계 판정을 받은 신고자가 280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 피해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원인은 '제도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피해자 가족은 주장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가피모)'은 세계 환경의 날인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피해 지원 제도 개선을 호소하는 편지를 전달하면서 "참사 피해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또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가 2015년 부친을 잃은 김미란씨는 "아버지는 4단계 피해로 판정된 간질성 폐 질환으로 돌아가셨다"면서 "3·4단계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데 정부는 급성이 아닌 만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가구 공룡 이케아, '안전 기준' 없는 국내 소비자 외면

이케아는 말름서랍장 아동 사망사고 발생 당시 미국에선 즉각 리콜을 시행했지만, 한국은 법적 안전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리콜을 거부했다. /더팩트DB
이케아는 '말름서랍장' 아동 사망사고 발생 당시 미국에선 즉각 리콜을 시행했지만, 한국은 '법적 안전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리콜을 거부했다. /더팩트DB

국내 소비자 권리가 철저히 무시된 사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가구 공룡 이케아는 '서랍장'이 넘어져 미국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자 '리콜' 조치했다. 또한 어린 자녀가 사망한 세 가정에 총 500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법적 안전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리콜을 미루며 서랍장 고정 장치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가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뒤늦게 리콜 시행을 결정했다.

미국의 경우 ASTM(미국재료시험협회규격)에 '지지대 등 다른 구조물 없이 서 있는 서랍장은 빈 서랍의 문을 다 열어 앞쪽으로 무게가 쏠리더라도 안전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또한 서랍에 물건이 있거나 아이가 매달리는 등의 상황을 고려해 서랍당 약 50파운드(23㎏ 안팎)의 납이나 쇳덩이를 얹었을 때도 엎어지지 않아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통합인증(KC)이란 제도가 있지만 서랍장 안전성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서랍이 넘어지는지, 모서리가 너무 뾰족하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 통과하면 판매에 문제가 없다. 리콜을 권고한 한국소비자원 역시 '권한'만 있을 뿐 '강제'할 수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내 소비자정책국은 1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는 2개에 불과해 정부부처에 흩어져 있는 소비자 업무를 조정·총괄하는 기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팩트DB
공정거래위원회 내 소비자정책국은 1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는 2개에 불과해 정부부처에 흩어져 있는 소비자 업무를 조정·총괄하는 기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팩트DB

◆소비자단체, '공정위' 소비자 정책 총괄 한계…독립적 정책 기구 필요

이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한소협)와 한국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해 '독립적인 소비자정책 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소비자 정책을 총괄하는 공정위가 있지만, 소비자 관련 기구와 조직은 각 정부부처에 흩어져 있어 소비자 관련 업무를 조정·총괄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게 한소협 지적이다. 공정위 조직 5국 중 소비자 관련 조직은 소비자정책국 뿐이고, 직접적으로 소비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 역시 2개 부서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한소협은 주장하고 있다.

'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폭스바겐은 미국 차량 소유주들에게 1인당 최고 1만 달러(한화 약 116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키로 결정했지만, 국내에는 리콜 조치만 했다.

당시 법조계 관계자들은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신속한 배상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미국 정부가 부과할 수 있는 40조 원대의 '징벌적 배상'을 피하기 위한 선택인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과 달리 소비자와 끝까지 맞서다가 배상금의 10배를 물어준 사례도 있다.

미 법원은 지난해 5월 존슨앤드존슨(J&J)의 탈크 기반 파우더를 사용해 난소암이 발병한 60대 여성에 5500만 달러(한화 약 6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피해배상금은 500만 달러였지만,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무려 10배인 5000만 달러에 달했다.

◆국내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상액 상향 조정해야

폭스바겐은 미국 차량 소유주들에게 1인당 최고 1만 달러(한화 약 116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선 리콜만 실시했다. /더팩트DB
폭스바겐은 미국 차량 소유주들에게 1인당 최고 1만 달러(한화 약 116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선 리콜만 실시했다. /더팩트DB

현재 우리나라는 8개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 있다. 하도급법과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제조물책임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 이용·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기간제·단시간근로자 보호법 등이다. 이들 모두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최대 3배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이점인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개최한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 적정화를 위한 민사적 해결방안' 심포지엄에서 " 개별입법 형식으로 3배 이내의 배상책임을 지도록 한 현행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며 "(손해배상액) 최하 3배 이상 10배 이내로 상향조정할 팔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소비자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된 소비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소협은 지난해 4월 1∼5일 컨슈머인사이트를 통해 전국의 20대 이상 소비자 509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3%가 법적으로 보장된 소비자의 8대 권리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했다.

특히 '전혀 모르고 있다'고 답한 소비자가 27.7%,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내용은 모른다'고 답한 소비자가 33.6%였다. 소비자 8대 권리란 △안전할 권리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선택할 권리 △의사를 반영시킬 권리 △보상을 받을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단체를 조직·활동할 권리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 등이다.

강정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은 경쟁정책과 소비자정책 균형을 위해 대통력 직속의 소비자정책 독립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덕인 기자
강정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은 "경쟁정책과 소비자정책 균형을 위해 대통력 직속의 '소비자정책 독립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덕인 기자

강정화 한소협 회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성장위주의 정책을 해왔다. 여기에서 온 여러 문제 중 하나가 소비자 문제로 나타난다"면서 "소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업자, 소비자, 행정 등에서 균형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소비자 정책을 공정위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이곳은 경쟁 정책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경쟁의 최종 목적은 소비자 보호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각 부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문제를 총괄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 중 하나가 대통령 직속의 소비자위원회 설치가 있었다. 지난 경험에 소비자 피해들이 다방면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며 "그리고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구제장치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집단소송제를 비롯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의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bd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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