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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핀현준의 초창기 활동 모습. 사진=스포츠서울DB |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모든 댄서들이 힙합을 추고있을 때 꾸준히 팝핀만을 고집하는 이가 있었다. 팝핀현준. 그는 햄버거와 콜라를 매우 좋아하는 열정적인 팝핀댄서였다.
1996년 영턱스클럽 1집 때 처음 대면한 그를 데리고 온 사람은 성룡이라는 친구인데 별명이 춘삼이였다. 그의 소개로 만난 현준의 첫인상은 눈빛이 강렬한 어린소년 같은 느낌이였다. 고집은 물론 끈기과 열정도 있어 보였다.
당시 필자가 “춤 좀 춰봐”라고 말했더니 그는 수줍은 듯 웨이브를 선보였다. 그 웨이브는 매우 깔끔했다. 그 느낌이 좋아 연습멤버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인연은 시작됐다.
영턱스클럽 스케줄 끝나고 오면 항상 연습 파트너로 함께 했다. 필자와 현준은 방송 스케줄 때문에 낮 연습시간이 부족해서 밤과 새벽에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연습을 준비하는데 그가 집에 가지 않고 연습실에 있었다.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으니 “형이랑 같이 연습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때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새벽 연습 도중에 동료 연예인이었던 ‘HOT’ 멤버 장우혁이 연습실로 놀러와 현준한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실력은 나날이 성장해갔다. 그런 열정과 끈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현준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큰 키는 아니었지만 동작 등에 웅장한 스케일이 있었다. 또 진정한 노력파였다. 그 성과로 현준은 세계적인 팝핀 댄서가 될 수 있었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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