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6>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 첫 금메달 숨은 주역은 中 주치의?…②편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1.06.16 10:01 / 수정: 2011.06.16 10:58

▶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 "안현수 응원, 러시아 국적 달면…" ①편

카페 창 너머로 그의 삶을 대변해 주듯 오륜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올림픽은 전이경의 인생에 찬란한 영광을 선물했다.

▲전이경,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이 돼 돌아왔다
▲전이경,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이 돼 돌아왔다

◆ 올림픽 첫 금메달…숨은 주역은 중국 대표팀 주치의?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은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 대회는 참가에 의의를 뒀죠.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멋모르고 운동했었죠.(웃음) 남자 대표팀 김기훈 선배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이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 나섰다. 어느덧 대표팀 에이스로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대회 한 달 전, 뜻하지 않게 왼쪽 발목을 다쳤다. "부기가 빠지지 않아서 스케이트화를 신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도전이라는 단어에 설레였기에 부상은 더욱 뼈아팠다
▲'도전'이라는 단어에 설레였기에 부상은 더욱 뼈아팠다

"당시에는 중국, 캐나다가 여자부에서는 최강이었죠. 저를 견제 대상으로 여기지를 않았어요. 중국대표팀 주치의가 갑자기 저를 치료해 주겠다며 방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대회 출전이 불발에 그칠 수 있는 상황이라 전이경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치의를 찾아갔다. "정말 무서워 보이는 삼지창 모양의 침을 놓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아프겠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믿든지 말든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거짓말 같이 부기가 가라앉아서 정말 놀랐어요."

중국대표팀 주치의의 도움은 전이경의 올림픽 첫 금메달로 이어졌다. "너의 능력을 믿는다"는 전명규 감독의 응원과 함께 3000m 계주에서 김소희, 김윤미, 원혜경과 함께 첫 금메달을 일궈 냈다. 1000m에서도 당대 최고 스타인 나탈리 램버트(캐나다)를 따돌리고 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어요. 워낙 독보적인 선수를 이겼으니까요." 전이경의 금메달을 도운 중국 주치의, 그때 심경은 어땠을까.

▲노력하자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전이경의 첫 금메달의 사연은 이채로웠다
▲노력하자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전이경의 첫 금메달의 사연은 이채로웠다

◆ '회심의 발 내밀기'…나가노의 가슴 뜨거운 추억

릴레함메르 올림픽 2관왕 이후 전이경은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갔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3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전이경 생애 최대 라이벌로 손꼽혔던 양양A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이경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두 선수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또다시 만난다.

"나가노 대회 때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양양A가 워낙 상승세였어요." 전이경은 양양A와 자신의 장점이 거의 같았다고 했다. 양양A는 지구력, 체력은 물론 여우 같은 경기 운영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쇼트트랙 첫날 3000m 계주에서 여유 있게 중국을 따돌리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양양A에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1000m 결승전이었다.

▲전이경(앞쪽)과 양양A는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전이경(앞쪽)과 양양A는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예상했던 선수들이 다 올라왔죠. 양양A는 8강, 4강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올라왔어요." 결승전에는 전이경을 비롯해 원혜경, 양양A, 양양S가 올라왔다. 한·중전 양상을 띤 것이다. 초반 양양S가 앞으로 나가고 원혜경이 뒤를 쫓았다. 전이경은 맨 뒤에서 앞을 살폈다.

그런데 중국의 협동 작전으로 전이경과 원혜경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두 바퀴를 남겨 뒀는데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니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죠. 그런데 양양S가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빠르게 치고 나가 그 선수를 먼저 제쳤죠. 그리고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양양A를 추격했어요."

양양A도 전이경이 인코스로 치고 나올 것을 예상했다. 전이경은 막판 그를 따라붙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살끼리 얽혔는데 순간 힘을 역이용했어요. 팔을 앞뒤로 움직이지 않고 반대로 움직였어요. 최후의 판단으로 발을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극적으로 우승했죠." 전이경은 오른발을 내밀며 균형을 잃고 얼음 위에 미끄러졌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극적인 금메달이자 2회 연속 2관왕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양양A는 몸싸움 과정에서 실격 처리 돼 메달권에서 제외됐다. "사적으로는 친한 선수예요. 중국의 레전드죠.(웃음)"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환영식장에 들어선 김동성(왼쪽)과 전이경(가운데)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환영식장에 들어선 김동성(왼쪽)과 전이경(가운데)

▲나가노의 영광은 전이경 생애 최대 기쁨이었다
▲'나가노의 영광'은 전이경 생애 최대 기쁨이었다

◆ 후배 김동성의 '오노 액션' 논란, 너무 화가 나서…
1999년 스케이트화를 벗은 전이경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 방송 해설위원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 논란이 빚어진 김동성의 1000m 경기에서 격앙된 어조로 주목 받기도 했다. "지금 해설과는 차이가 있어요.(웃음) 그때는 너무 흥분했죠. (김)동성이 사건 이후 스포츠 중재위원회에 제소할 때도 참석했어요."

"너무 화가 나서 일어서서 해설을 했어요. 방송국 홈페이지가 다운됐죠. 글을 잘못 적으면 매국노 취급도 당했으니까요.(웃음) 쇼트트랙의 특성상 그럴 수 있지만 우리 선수가 피해를 받으니까 더 안타깝더라고요."

▲방송 해설에서도 어느덧 관록이 느껴지고 있다
▲방송 해설에서도 어느덧 관록이 느껴지고 있다

오노 논란은 국내 톱 이슈로 자리 잡았다. '빼앗긴 금메달'로 여겨졌다. 오노의 ‘안티’도 급증해 급기야 미국 내 쇼트트랙 관련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였다. "동성이랑 한참 지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자기가 오노 입장이었어도 동일하게 행동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판정은 애매했어요. 당시 호주 심판이 동성이의 실격 사유를 '투스텝'이라고 말했거든요. 오른발이 두 번 나가면 실격 사유가 되는데 비디오를 돌려봐도 전혀 그러지 않았거든요."

첫 해설에서 예기치 않은 판정으로 전이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부 시청자의 비판도 들어야 했다. 유일한 쇼트트랙 여성 해설자로서 목소리 톤 조절에도 힘써야 했다. "그 이후 목소리를 약간 깔아서 해요.(웃음) 그래도 후배들이 저를 흥분시킬 수 있는 멋진 경기를 계속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천성적인 도전 정신이야말로 전이경(왼쪽에서 첫 번째)을 이끈 원동력이다.
▲천성적인 도전 정신이야말로 전이경(왼쪽에서 첫 번째)을 이끈 원동력이다.

1편에서 살펴봤듯이 전이경은 은퇴 이후에도 아름다운 질주를 이어 갔다. 쇼트트랙과 인연을 이어 가면서 또 다른 길을 개척하고 도전했다. 얼음 위를 수놓은 영광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다.

"삶의 동기를 항상 찾고 살아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에 앞으로 계속 기여하기 위한 예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믿고 지켜봐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팩트 독자 여러분들도 건강하세요."

▲오륜기와 잘 어울리는 전이경의 힘찬 행보를 기대한다
▲오륜기와 잘 어울리는 전이경의 힘찬 행보를 기대한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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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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