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6>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 "안현수 응원, 러시아 국적 달면…" ①편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1.06.10 13:13 / 수정: 2011.06.10 14:17

길의 종착지를 늘 묻곤 했다. 쉬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 나가는 길들이 어떤 것을 가져다 줄지 궁금하기도 했다. '헝그리 정신'에 둘러싸여 짙은 안개와 시끄러움도 따랐다. 하지만 묵묵히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찬란한 영광을 맛봤다.

도전하고 성공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자유로운 시간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삶의 깊이는 더해졌다. 전이경(36)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여덟 달 만에 태어난 팔삭둥이로 1.7kg 미숙아로 태어났다. 건강을 위해 어린 시절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그리고 운명으로 다가온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환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은 그에게 건강을 넘어 인생의 커다란 영광을 안겨줬고 그의 길이 됐다.

▲전이경, 쇼트트랙의 여왕에서 전설이 됐다
▲전이경, 쇼트트랙의 여왕에서 '전설'이 됐다


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2관왕(1000m, 3000m 계주)에 올랐다. 1995년~1997년 세계선수권에서 개인 종합 3연패를 이뤘다. 전이경이 거둔 성적은 여자 쇼트트랙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남아 있다.

9일 오후 2시. 서울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올림픽기념관 근처 한 카페에서 전이경을 만났다. 창 너머로 그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은 오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코리언 레전드' 여섯 번째 주인공인 그는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도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코리언 레전드로 뽑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가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해설을 할 때도 아직 저는 선수 같은 느낌이거든요."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임원인 전이경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임원인 전이경

◆ 은퇴 후 '골프, 아이스하키까지…' 만능 스포츠인

전이경은 1999년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까지 출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선발전을 앞두고 다친 허리 가 악화됐다. "병원에 있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굳혔어요.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좋은 시기라고 생각을 했고요."

당당하게 은퇴를 했다. 하지만 공허감이 있었다. 평생 스케이트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였기에 달라진 생활 방식이 어색했다. "일부러 잠을 늦게 자 보기도 했어요. 현역 시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니까 항상 그 시간에 눈이 떠졌어요. 당당하게 은퇴를 했는데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죠."

▲전이경은 은퇴 후 골프에 도전하기도 했다
▲전이경은 은퇴 후 골프에 도전하기도 했다

도전하는 삶의 연속이었듯, 전이경은 은퇴 후 평소 호기심을 갖고 있던 골프에 도전했다. 2003년 3수 끝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준회원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골프장을 몇 번 가 봤어요. 제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을 때 박세리 선수가 맨발의 투혼을 보여 주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거든요. 언젠가 더 늙기 전에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스케이트를 타면서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2005년에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는 쇼트트랙을 할 때도 훈련의 일부분이었어요. 쇼트트랙이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운동인데 아이스하키가 그런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쇼트트랙을 약간 변형한 것이었고, 골프를 해서 아이스하키 스틱을 잡는 것도 익숙했어요. 한 가지 일화는 앞을 향해 달리거나 쇼트트랙 움직이는 방향처럼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빠르니까 사람들이 '와~'하고 탄성을 질러요. 그런데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약간 어색해 하니까 웃더라고요."

▲현역 시절 호쾌한 질주를 하던 전이경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현역 시절 호쾌한 질주를 하던 전이경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선수 권익 보호 나선 전이경 "요즘 세대에 헝그리 정신은…"

전이경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기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입후보했다. 현역 시절부터 간직해 온 오랜 꿈이기도 했다. 평일에는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영어 과외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럽의 벽은 높았다. 한국에는 아직 선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크 로케 IOC 위원장의 추천으로 IOC 선수분과위원으로 활동했다. 향후 선수위원으로 재도전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이후 부산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2명의 어린이를 봐 준 것이 계기가 됐다. 그리고 2008년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임원으로 임명됐다.

"IOC에서는 모든 분과에 선수 출신 위원들이 있어요. 그 경험을 밑바탕으로 선수들의 인권 문제들을 다루는 일을 하는 것이죠. 선수 권익을 위해서 모임도 갖고요. 현재는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체육계 (성)폭력을 다루고 있어요. 종목을 가리지는 않아요."

▲전이경은 12살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전이경은 12살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 전이경은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임원으로서 선수 권익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 전이경은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임원으로서 선수 권익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20년의 선수 생활로 내부적인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한편으로는 은퇴 이후에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니 체육계 현실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한다. '헝그리 정신'의 환경 속에서 운동했던 자신들의 세대와 현 세대의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에게 헝그리 정신을 강요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 됐어요. 폭력에 관련된 접수 내용을 들여다보면 선수, 지도자의 주장이 다 맞는 말이에요. 서로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죠. 선수는 과거 스파르타식에 익숙한 지도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지도자도 최근 흐름인 선수들의 자유분방한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요. 어려워요, 그렇지만 선진국의 교육 형태로 진입하는 성장통이었으면 해요."

▲ 전이경이 요즘 전성기를 누렸다면 어떤 분위기일까.
▲ 전이경이 요즘 전성기를 누렸다면 어떤 분위기일까.

◆ "요즘 선수들은 실력·외모 겸비"…전이경의 금메달 가치?

전이경은 7일 <더팩트> 수요 기획에 등장한 강초현(30·한화 갤러리아)의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기사보기) "강초현 선수가 김연아, 손연재 선수와 동시대였다면 어땠을 것인가라는 내용을 봤어요. 사실 이렇게 생각해요. 제가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올림픽 금메달을 많이 따도 스포트라이트를 그렇게 많이 받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다소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해 왔기에 후배들과 생각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 세대는 실력과 외모가 모두 받쳐 줘야 해요. 제가 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요.(웃음) 오히려 예전에 활약한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발달과 함께 스타성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비인기 종목도 인기 종목으로 발전시키는 현대 스포츠 산업을 바라보면 부럽기도 한 모양이다. 억울한 생각도 좀 들었다고 한다. 또 쇼트트랙의 약점이라면 워낙 메달을 많이 따 오히려 희소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 여우 같은 승부 본능을 지닌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얼음판 위의 여왕이었다.
▲ 여우 같은 승부 본능을 지닌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얼음판 위의 여왕이었다.

"제가 금메달 4개를 따서 이렇게 레전드로 뽑아 주셨죠. 하지만 다른 후배들도 금메달을 많이 따고 있어요. 희소가치가 조금 떨어져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한테 금메달리스트를 물어보면 이름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그런 점에서 약점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전이경의 금메달은 차별화된 가치를 얻기에 충분했다. 특히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일궈 낸 2관왕은 당시 IMF 외환 위기로 허덕이던 국민들의 가슴 속에 시원한 단비를 내려 줬다. "당시 금메달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힘든 시기에 기쁨을 드렸으니까요. 제 인생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것 같아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은 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은 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 '후배 사랑' 전이경 "안현수 응원, 러시아 국적 단다면…"

전이경과 유쾌한 쇼트트랙 이야기는 자연스레 지난 1일 ‘러시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떠난 안현수에게 화제가 모아졌다. 그 역시 안현수에 대한 아픈 마음을 전했다. "훌륭한 선수 한 명이 국내 무대를 떠났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죠. 안현수의 마지막 목표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일이잖아요? 사실 국내 빙상계의 파벌 문제로 야기됐지만 내부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많겠죠."

"선수로서는 억울한 점이 많은 것이고 연맹은 공평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죠. 사실 지도자들도 외국에 많이 나가 있는 상황이잖아요? 이 문제는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스포츠 팬들의 관심사는 안현수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러시아 국적으로 출전할지 여부다. "한국 국적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올림픽 선발전이 있으니까요. 급하게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죠.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 전이경은 러시아로 떠난 안현수에 대한 질문에 마음 아파했다.
▲ 전이경은 러시아로 떠난 안현수에 대한 질문에 마음 아파했다.

"(국내에서 다시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겠죠. 오히려 러시아 선수들은 안현수와 훈련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겠죠.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 국기를 달고 나와도 비난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러시아 대표팀으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든 못 따든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런 상황까지는 안 왔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고요."

전이경은 안현수가 러시아라는 색다른 환경에서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올림픽 선발전에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그 이상의 드라마나 영화도 없을 것이란다. 자신보다 더 귀중한 레전드로 남을 것이라고. 단, 그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국적으로 금메달을 딴다면, 더구나 올림픽 무대라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①편 끝>…다음 주 ②편(6월 16일)에서는 전이경의 유년 시절, 올림픽 일화가 이어집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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