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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배구 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 받는 김세진 |
그리고 33살의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영원한 재능'을 끝없이 펼칠 것으로 보이던 배구계를 떠나 회사원으로 변신했다. 이후 인생의 부침을 겪으며 마음고생도 했다. 자신의 가치관과 주변에서 바라보는 이상향의 괴리였다. 2007년 마이크를 잡고 배구 해설자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세진은 이제 방송에서 익숙하다. 회사원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가 살 온 삶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흥미롭고 격렬했다. 18일 오후 서울 신천의 한 카페에서 '코리언 레전드' 다섯 번째 주인공인 김세진을 만났다. 이채로운 삶의 궤적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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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과 배구 해설을 병행하고 있는 김세진 / ⓒ 문병희 기자 |
"레전드로 뽑아 주셔서 기쁘지만 부끄럽네요. 내가 그 정도의 선수였는지 되돌아봤어요. 주변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하세요. '저와 요즘 뛰고 있는 선수들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냐'고요. 대부분 제가 낫다고 말씀을 하셔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제가 한창 뛸 때는 용병이 없었잖아요?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한 것 같아요. 어쨌든 그때의 행복한 추억이 저를 레전드로 선정해 주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본인이 세터라면, 김세진-신진식 중 누구에게 공을?
2m가 넘는 훤칠한 키에 현역 시절 트레이드 마크인 호탕한 미소 그대로였다. 기자와 마주한 그는 후배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목소리에 아쉬운 미소 한 방을 날렸다. "복싱으로 따지면 알리와 타이슨이 전성기에 맞붙으면 누가 더 낫냐고 물어보는 것이죠.(웃음) 즉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시대에서 잘하는 사람이 승리자죠."
한국 남자 배구는 한때 '좌(左)진식·우(右)세진' 콤비가 대세였다. 대표팀에서도 양대 산맥이었다. '포스트 좌 진식, 우 세진"인 문성민-박철우' 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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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배구 '쌍포'였던 김세진(오른쪽)과 신진식 |
"(신)진식이는 수비 능력이 뛰어나요. 문성민은 파워와 높이에서 앞서죠. 솔직히 전성기를 놓고 따졌을 때 여러 면에서 신진식을 꼽고 싶어요. 제 포지션에서는 박철우가 세밀한 기술과 블로킹은 저보다 떨어지지 있겠지만 파워가 좋아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비교가 불가능해요. 분명 이 둘은 향후 한국 배구를 이끌어 갈 최고의 콤비입니다."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학창 시절 세터를 맡았던 기억을 되살려 만약 경기 중 위기 상황에서 본인이 세터라면 김세진과 신진식, 누구에게 공을 넘겨줄까? "공격 상황으로만 놓고 보면 저한테 주겠어요.(웃음) 그런데 다른 상황에 처한다면 진식이를 활용할 것 같아요. 너무 애매했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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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중인 김세진 / ⓒ 문병희 기자 |
2006년과 2007년 각각 삼성화재 유니폼을 벗었던 김세진과 신진식은 이후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 갔다. 그러다 최근 신진식은 홍익대학교 배구부 감독으로 임명돼 지도자로 나섰다.
"기분 좋은 일이죠. 진식이는 후배라기보다 동생에 가까워요. 홍익대 감독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도 저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꼭 성공하라고 응원해 줬죠. 김상우(LIG 손해보험) 감독도 저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한 오랜 동료인데 다들 지도자로 잘 되면 좋은 것이죠."
일각에서는 올 시즌 삼성화재를 우승으로 이끈 '특급 용병' 가빈과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세진은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짓더니 "아이고, 가빈 그 친구는 완전 괴물이에요. 제가 안 될걸요?(웃음)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도 팀에 희생하고 해내겠는 의지가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며 손을 내젓는다. 지나친 겸손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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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진과 삼성화재의 만남은 큰 결실을 이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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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9연패와 77연승의 신화는 전설이다 |
◆ 사업 안 되면 배구하라고? "지금도 가치 있는 일"
김세진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도 지도자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대답한다."안 가는 것 아닙니다. 못 가는 것이죠.(웃음) 사실은 감독으로 갈 만한 그릇이 아직 못 됐다고 판단해요. 욕심도 나지 않습니다. 제가 준비만 되면 후배가 감독인 팀에서 코치도 할 생각이 있어요. 물론 제가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에서요."
은퇴 후 늘 편견과 싸워 왔다. '왜 사업을 하느냐, 그거 하다 안 되면 배구에서 일해라’. 하지만 김세진은 이 말이 썩 기분 좋지 않다. "안 되면 배구를 하라는 말을 이해 못하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인데…. 이거 안 되면 저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싫더라고요.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영원한 배구인입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향후 배구에서 일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죠. 내가 이것을 실패하고 지도자 생활을 하면 평생 끌려 다닐 수 있어요. 생각을 바꿔야 돼요"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 현역 시절 최고의 스타로 대접 받았지만 이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은퇴 후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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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진에게 사업은 제2의 삶을 위한 과정이다 |
"사실 이 말은 공개적으로 처음해요. 과거 이혼한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데, 솔직히 가정이 있었다면 지도자에 바로 도전했을 수 있어요. 아내와 자녀가 있다면 솔직히 외부에 보여 주는 부분도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보니, 어떠한 명예가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인생 방법 중의 하나죠."
김세진은 어느덧 배구 해설 5년째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고의 스타가 배구 해설이나 하고 있냐'는 선입견에 시달렸다. "그분들에게 한 말씀 하고 싶어요. 해설? 이것도 일이에요. 배구의 기초적인 부분을 파고들고 더 나아가 스포츠마케팅 영역까지 바라봤을 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요. 어떤 분들은 해설을 하면 '돈이 되느냐'고 물어봐요. 돈 문제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가 더 문제 있는 것이죠. 해설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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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진은 어느 때보다 배구 해설의 매력에 빠져 있다. |
2007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해설을 맡은 김세진은 방송이 자신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를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죠. 그런데 선수 시절 우리 팀, 혹은 상대 팀만 바라보다가 양팀을 동시에 보니까 새롭더라고요. 이 상황에서 어떠한 전술을 구사할 것인지 생각하고 선수들의 심리도 엿볼 수 있었죠. 향후 지도자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되겠구나하고 느꼈고요."
김세진은 영원한 배구인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아직도 배구단 구단주의 꿈을 갖고 있듯 현재의 사업도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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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진의 최종 목표는 IOC위원이다 / ⓒ 문병희 기자 |
◆ '믿음과 신뢰' 얻는 지도자 꿈꿔…최종 목표는 IOC 위원?
김세진은 배구 해설가인 동시에 국내 한 IT회사 신규사업팀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운동 선수의 테두리에서 벗어났지만 일반 업무부터 시작해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성장의 디딤돌을 놓았다. "운동선수가 일반적으로 겪는 고통이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요. 더 노력했죠. 내 주변의 인맥을 모아 자리도 만들고 사람들과 어울렸고요. 더 배우기 위해 공부했고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답게 끈끈한 의리와 신뢰를 인정 받았다. 사회생활에서 영향력을 넓혀갔다. 회사의 방향이 스포츠와 연관됐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다하고 있다. 먼 훗날 후회 없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 "제 꿈은 IOC 위원이에요. 많은 것을 갖추어야죠. 사실 꿈도 못 꾸었던 일이죠.(웃음)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가 스포츠와 관련돼 있고요. 나중에 더 잘되면 배구단도 창설하고 싶죠."
"(지도자를 할 것인가) 나이에 따라 달라지겠죠. 가까운 시일 내에 배구단이 창설된다면 직접 해 볼 의향도 있어요. 하지만 늦어지면 제가 필요 없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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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진은 현역 시절을 뒤로 하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 중이다 |
<①편 끝>…다음 주 ②편에서는 김세진의 현역 은퇴식과 삼성화재·국가대표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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