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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립PC 전파인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용산 최대 조립PC 업체 '컴퓨존' 풍경 |
[ 이현아 기자] 성수기를 맞아 봄기운이 만연해야 할 용산전자상가가 조립PC 전파인증 논란으로 때 아닌 몸살을 앓고 있다. 조립PC도 전파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발표 이후,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업체는 물론, 크고 작은 조립PC 업체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것.
추위에 얼어붙었던 용산전자상가의 낡은 건물이 포근해진 햇살에 녹아내렸다. 찬바람만 일던 상가 안도 삼삼오오 무리지어 이동하는 남학생들의 이야기소리로 생기를 되찾았다. 다른 곳보다 일찍 봄을 맞는 용산전자상가는 졸업과 입학을 맞아 조립PC를 구매하려는 학생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저렴한 조립PC를 구매하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대학생 신모(23)씨는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예전부터 염두에 둔 조립PC 모델을 이제는 구매할 수 없게 된 것.
용산 최대 조립PC 판매점인 ‘컴퓨존’을 찾은 신씨는 안내원에게 모델명을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현재 판매가 중단된 모델”이라는 대답뿐이다. 신씨는 “좀더 빠른 컴퓨터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지만, 컴퓨터 부품이나 조립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우리 같은 아이들은 원하는 사양에 맞게 조립돼 있는 조립PC 완제품을 원한다. 컴퓨존에서 구입한 완제품은 1년간 무상 AS도 가능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준비돼 있는 제품을 팔지 못하는 업체 또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컴퓨존 관계자는 “제품이 없어서 못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문의한 ‘아이웍스’ 모델은 현재 전파인증 관련 검찰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제품이 있어도 판매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성수기를 맞아 아이웍스 모델을 구매하고자 찾아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청천벽력’ 컴퓨존 “20년 사업, 위법이 왠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8일 용산전자상가 최대 조립PC 업체인 ‘컴퓨존’의 조립PC에 대해 전파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처분을 내렸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 조립PC 업체에서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브랜드 조립PC 제품에 대해서는 전파인증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대해 컴퓨존 관계자는 “아이웍스의 경우, 행정·관공서용이 아닌,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조립PC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 것뿐이다. 조립PC를 판매해 놓고 폐업해 버리는 경우, 소비자들은 제품에 이상이 생겨도 AS를 받을 수 없다. 이에 컴퓨존은 조립PC도 무상AS를 시행하는 등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립PC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해서는 인증서를 모두 받아 보관하고 있다”며 “그러나 완성된 모델 모두에 전파인증을 받으라는 것은 사업을 접으란 말과 같다. 일반 대기업과 달리, 컴퓨존에서는 매월 120가지 모델이 출시되며, 해당 모델에 대해서도 한 두 개의 부품을 바꿔 판매된다. 이 모든 모델에 대해 전파인증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덧붙였다.
컴퓨존은 매월 120개 모델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중 판매되는 조립PC는 약 20대 정도. 50만원의 저가형 조립PC를 매월 20대씩 판매한다고 했을 때 발생하는 1000만원의 매출 중, 컴퓨존이 가져가는 것은 약 2~3%로, 30만원정도이다. 그러나 한 모델에 150만원에서 2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전파인증을 받으면, 조립PC의 단가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PC와 비슷한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인증기간이 2~4주 정도 걸린다고 봤을 때, 대기업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가격으로 출시된다.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의 PC와 동급 성능으로 봤을 때, 조립PC의 가격은 약 50~70% 수준이다. 그러나 모든 모델에 전파인증을 받게 되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빨리 성능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조립PC의 경쟁력이 사라진다. 조립PC 시장이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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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립PC 업체 관계자는 "조립PC가 전파가 대기업 PC보다 높다면 PC를 조립하는 기술자들 은 모두 환자여야 맞지 않냐"며 반문했다. |
◆ 조립PC 전파인증, 대기업은 ‘살리고’, 중소업체는 ‘죽이고’
조립PC의 전파인증 논란은 비단 판매정지를 당한 컴퓨존 만의 일이 아니다. 해당 법률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용산전자상가에 있는 대부분의 조립PC 업체가 갈 곳을 잃게 된다.
전국에 퍼져있는 크고 작은 조립PC 업체는 약 1만여개 이상이다. 용산전자상가와 같이 지역마다 밀집돼 있는 전자 관련 집단상가와 지역 곳곳에 위치한 조립PC 업체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이런 크고 작은 조립PC 업체에 부품을 납부하는 업체 또한 1000여 곳에 이른다.
조립PC 업체는 입을 모아 방통위의 전파인증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용산 한 조립PC 업체 직원에 따르면,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체신부는 지난 1992년 조립PC에 대한 전파인증은 하지 않는다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 법률은 사라지고, 1994년 ‘컴퓨터는 전파 인증 대상’이라는 내용만 기재돼 있다는 것. 방통위는 94년 재정된 법률에 따라 컴퓨존이 위법하다고 판정했다.
컴퓨존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립PC 업체 직원은 “(전파인증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현재 전파인증에 대한 논란은 지극히 대기업 중심”이라며 “한 모델에 대해 몇 만대씩 판매하는 대기업의 경우, 전파인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규모 조립PC 업체에도 동일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트북, 태블릿PC 등으로, 조립PC 업계가 위축돼 가고 있다”며 “용산 일대 땅값이 오르면서 전자상가의 임대료 또한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이 상황에서 조립PC에 대한 전파인증 논란은 업계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이런 불안감으로는 업체를 계속 이끌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조립PC의 전파인증 논란은 비단 조립PC 업체뿐만 아니라 PC방 업체에게도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다. 용산전자상가 인근 PC방 직원은 “PC방 업체 중, 브랜드 PC로 영업은 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고 사양에 가격이 저렴한 조립PC”라며 “전파인증 논란으로 조립PC의 가격이 뛰거나, 무조건 비싼 브랜드PC를 구매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