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공세→'독재정권' 반격…입법 독주→거부권 행사
"취임 1년, 협치 부재 책임 尹에"…협치 불가 전망도
윤석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공식 회동은 지난 1년 한 차례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 대표. /뉴시스 |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같이 약속했다. 대통령 집무실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였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인사, 외교, 대북관계, 야당과의 협치는 물론 대통령 부인의 역할도 조용한 내조로 바꾸겠다며 제2부속실도 폐지했다. 그로부터 1년, 윤 대통령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또, 청와대는 과연 국민의 품으로 들어왔을까. <더팩트>는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윤 대통령의 국민과 약속을 총 9회에 걸쳐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새 정부를 준비하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윤석열 대통령, 2022년 5월 10일 당선 소감 中)
윤석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와의 공식 회동 0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 간의 '협치 실종'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문재인 정부 기조 전면 전환'을 취임 1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문 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한 사정 공세로 공방을 벌이면서 야당과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야당도 이에 맞서 '검찰독재정권'이라며 반격하면서 좀처럼 '협치'의 틈을 만들지 못했다. 취임 2년차에 본격적으로 국정운영 동력을 얻으려면 협치가 필수적이지만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정치권은 전망한다.
정부와 야당이 처음부터 각을 세운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반 '협치 행보' 노력을 보였다. 지난해 5월 16일 첫 국회 시정연설장에 민주당 당색에 가까운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입장했다. 첫 악수도 당시 민주당 지도부인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등과 나눴다. 본회의장을 나와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의회주의라고 생각한다"며 협치 의지를 드러냈다. 민주당의 '영수(領袖) 회담' 제안에 대해서도 "여야 지도부가 논의해 면담을 요청할 경우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정부와 야당의 대립은 야권 인사에 대한 사정 공세가 시작되면서 심화했다. 2022년 5월 16일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며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그러나 대선 경쟁자였던 이 대표가 6·1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고, 민주당 당대표에 선출되면서 급격하게 기류가 변했다. 특히 이 대표가 지난해 9월 대선 당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 대표 측근이 잇따라 구속, 기소되고 당사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대립은 극에 달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지난 2월에는 남대문에서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6년 만에 장외투쟁에도 나섰다. 이때부터 '윤 대통령 탄핵' 발언도 당 지도부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공식 회동도 없었다. 지난해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과 올해 3·1절 기념식, 4·19 혁명 기념식에서 가볍게 인사하는 데 그쳤다. 이 대표는 영수 회담이 거절당하자, 여야 대표 간 만남 형식으로라도 만날 것을 제안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지난 신년 인사회 때는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며 지역 일정을 이유로 민주당 측이 불참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했지만, '당대표를 패싱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해 이마저도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만남은커녕 대통령실과 야당 간 '고소 고발'이 난무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김건희 여사 관련 '조명' 의혹을 제기한 장경태 최고위원을 고소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관련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민주당은 대통령실을 무고죄로 맞고발했다.
대통령의 협치 외면에 민주당은 '장관 탄핵'과 '입법 독주'로 응수했다. '외교 참사'라며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을 포함해 간호 직역의 업무를 명확히 정의한 '간호법'도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양곡관리법은 윤 대통령이 첫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했고, 간호법도 오는 16일께 두 번째 거부권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노동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는 '노란봉투법'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도 조만간 본회의 직회부를 거쳐 국회 문턱을 넘을 예정이다. 거대 야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양새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대장동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등 쌍특검이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 표결을 앞두고 강 대 강 국면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취임 1주년 계기로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야당 대표가 기소된 만큼 내년 총선까지 협치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2022년 10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는 순간 피켓시위하는 민주당 의원들. /남윤호 기자 |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협치를 풀어가지 못하면 향후 정부가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당대표 리스크와 돈 봉투 의혹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야당 악재에도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는 것도 윤 대통령이 '포용의 정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민주당 A 의원은 "대통령은 검사가 아닌 고도의 정치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1년이 다 되도록 거부하는 건 이례적"이라며 "(회동은) 대통령실에서 큰 결단을 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A 의원은 또 윤석열 정부의 '전임 정부 탓'도 지적했다. 그는 "고장 난 레코드판도 아니고 사정 공세하고 정책은 모두 전 정부 탓한다"며 "(윤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해봐서 그런지, '협치'라고 말만 하지 그 함의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또 조정 역할을 해야 할 당 지도부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은 "취임한 지 1년이 됐기 때문에 이유를 불문하고 이제 '협치 부재'의 책임은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라는 마이너스 효과는 대통령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협치나 화해 노력을 하면 오히려 대통령이 돋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제 협치의 묘를 발휘할 시점이 됐다"고 제언했다.
야당 대표가 기소된 만큼 앞으로도 협치는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원내 1당 대표가 기소되면서 사실 여야 협치의 레드라인은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원로 등이 협치하라고 주문하지만 현실은 협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 또 총선을 앞두고 진영 간 결집 시도가 뒤섞이면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결국 총선에서 국민이 '협치 실종'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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