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12년을 구형 받은 것을 재계 안팎에서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특검이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뇌물죄' 부분보다 '재산국외도피죄' 쪽으로 눈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징역 12년 구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박영수 특별검사가 내린 구형량을 두고 재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직 선고기일이 남아있지만, 단순 구형량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지난 2006년 20조 원대 분식회계와 9조8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사기대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징역 15년 구형, 추징금 23조 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더욱이 이 부회장 재판에서 주로 다뤄진 쟁점이 '뇌물공여'였다는 점에서도 이번 특검의 구형은 매우 무겁다는 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형법상으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상 재산국외도피죄는 자금 규모가 50억 원이 넘을 경우 형량 기준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특검은 삼성에서 최순실이 독일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를 통해 마필 및 차량 구매 등 용역비 명목으로 허위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회사 명의의 독일 KEB하나은행 계좌에 약 10억9000만 원을 송금한 것을 두고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정유라가 대회출전 용으로 탔던 '살시도' 구매대금 약 7억5000만 원, 마필 수송차 구매 대금 약 2억6000만 원, 국외 전지훈련 관련 용역 대금 약 8억8000만 원 등 용역 계약과 관련해 삼성이 송금한 모든 자금도 뇌물로 본다.
즉, 애초부터 삼성전자 승마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용역 계약 대금 전부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에 귀속된다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이 부회장은 '용역 서비스'를 지급사유로 내부 품의서를 작성해 회삿돈을 유용했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특검은 코어스포츠와 용여계약, 마필 및 운송용 차량 매입 계약, 함부르크 용역계약 등 명백한 처분문서가 존재하는 계약들에 관해 허위계약 또는 이면약정이 존재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더팩트 DB |
특검의 주장에 변호인 측은 4개월여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줄곧 "코어스포츠는 실체가 있는 회사로 컨설팅 계약 역시 허위가 아니다"라고 강조해왔다.
전날(7일) 결심공판에서도 송우철 변호사는 "특검은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 마필 및 운송용 차량 매입 계약, 함부르크 용역계약을 비롯해 지난 2016년 8월과 10월 체결된 마필 매매계약, 삼성전자와 말 중개상 헬그스트란드 사이의 해제 합의서 등 명백한 처분문서가 존재하는 계약들에 관해 허위계약 또는 이면약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라면서 "그러나 대법원은 처분문서의 진정 성립이 인정되는 이상 반증이 없는 경우 해당 문서 기재에 따른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설시하지 않은 채 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뇌물죄' 부분보다 '재산국외도피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위해 실제 자금 거래가 오갔던 용역 계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실제로 지난 4월 첫 공판기일 이후 무려 50여 차례에 걸쳐 진행된 재판에서 특검과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때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그에 따른 순환출자고리 해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삼성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 처리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는지를 핵심 쟁점으로 법리 다툼을 벌여왔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에서 특검과 변호인단 양측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때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삼성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 처리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는지를 핵심 쟁점으로 법리 다툼을 벌여왔다. /그래픽=정용무 그래픽 기자 |
양측이 삼성과 코어스포츠 용역 계약을 화두로 공방을 벌인 것은 지난 4월 27일 8회차, 5월 2일 10회차, 5월 10일 11회차, 6월 20일(2017년 6월 20일 자 <이재용 재판, 삼성의 '역습' "'라우싱(독일 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기사 내용 참조)과 같은 달 30일 34회차 재판(2017년 6월 30일 자 <이재용 재판, 삼성 "말 세탁, 억측"…말 소유권 해제 확인서 공개> 기사 내용 참조) 등이 전부다. 특히, 이 가운데 지난달에 열린 2번의 재판에서는 특검이 삼성에서 최 씨에게 소유권을 넘겨줬다는 '라우싱'을 비롯해 구매 대금 명목으로 재산국외도피죄 항목에 포함한 마필의 소유권 해제 확인서를 공개하면서 특검이 수세에 몰렸다.
특검은 양형 최종의견의 첫 대목을 '피고인들의 범행 중 재산국외도피죄의 법정형이 징역 10년 이상인 점'을 들면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이 이 부회장에 적용한 혐의 가운데 재산국외도피죄는 형량이 가장 높다. 뇌물공여의 경우 법정형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로 상대적으로 가볍다"라며 "만일, 재판부가 뇌물수수혐의만 인정한다면, 이 부회장의 형량은 특검의 구형량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본건 재판의 핵심 쟁점은 삼성과 청와대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다. '묵시적 합의'를 주장하는 특검과 '증거가 없다'는 변호인 측의 공방이 팽팽한 만큼 결과를 쉽게 내다볼 수는 없지만, 재판부가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구형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재산국외도피죄 혐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