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월드컵에는 수많은 라이벌전이 존재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서사를 모두 갖춘 맞대결을 꼽으라면 단연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다.
16일 오전 4시(한국시간)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두 나라가 다시 만난다. 단순한 4강전이 아니다. 40년 동안 이어져 온 월드컵 최고의 라이벌전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시작됐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상흔 속에서 두 팀은 같은 무대에 올랐다.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장면을 한 경기에서 만들었다. 하나는 손으로 넣은 '신의 손' 골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프라인 부근에서 다섯 명을 제치고 넣은 '세기의 골'이었다. 논란과 감탄이 동시에 탄생한 그 경기는 축구를 넘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됐다.

12년 뒤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데이비드 베컴이 퇴장을 당하며 잉글랜드가 승부차기 끝에 무너졌다. 다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베컴이 페널티킥 결승골로 복수에 성공했다. 두 나라가 만날 때마다 월드컵은 단순한 승부를 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2026년의 주인공은 이제 리오넬 메시와 주드 벨링엄이다. 메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축구의 전설이다.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을 새로 쓰며 마지막 월드컵 우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젊은 시절 폭발적인 드리블로 상대를 무너뜨렸다면 이제는 경기 전체를 지배하는 리더십과 축구 지능으로 승부를 바꾼다. 세월은 그의 스피드를 조금 가져갔지만, 대신 경기를 읽는 능력과 결정력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반대편에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벨링엄이 있다. 그는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모든 능력을 갖춘 미드필더다. 공격과 수비를 연결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직접 골까지 만들어낸다. 이번 대회에서도 잉글랜드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벨링엄은 단순히 잉글랜드의 에이스가 아니라, 메시 이후 세계 축구를 이끌 차세대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맞대결은 과거와 현재의 충돌이기도 하다. 메시는 마라도나의 유산을 이어받아 전설을 완성하려 한다. 벨링엄은 베컴과 제라드, 램파드, 루니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월드컵 정상에 도전한다. 한쪽은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전설이고, 다른 한쪽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리더다.

축구는 세대교체를 반복한다. 펠레의 시대가 지나자 마라도나가 등장했고, 마라도나 이후에는 메시와 호날두가 세계 축구를 지배했다. 이제 그 바통은 벨링엄과 야말, 음바페, 홀란 같은 젊은 세대에게 넘어가고 있다. 월드컵은 언제나 그 교체의 순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그래서 이번 준결승은 단순히 결승 진출권 한 장을 놓고 벌이는 승부가 아니다. 한 시대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교차하는 역사적인 무대다.
영국의 전설적 감독 빌 샹클리는 "축구는 삶과 죽음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스포츠다"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월드컵은 바로 그 말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 1986년 마라도나가 역사를 만들었다면, 2026년에는 메시와 벨링엄이 새로운 역사를 쓸 차례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축구는 언제나 새로운 주인공을 통해 과거의 명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40년이 흘렀지만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시계는 여전히 같은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 세계 축구팬들은 또 하나의 월드컵 명승부가 탄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