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멈추고 싶은 멈춰야 하는①] 끊이지 않는 급발진 의심 사고
입력: 2024.08.24 06:00 / 수정: 2024.08.24 10:31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건수 15년간 793건
대법원이 급발진 사고 인정한 사례 없어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자동차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사진은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한 사고 차량의 모습. /박헌우 기자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자동차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사진은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한 사고 차량의 모습. /박헌우 기자

'시청역 참사' 등을 계기로 차량 급발진 문제와 고령 운전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의 입증 책임을 소비자가 지고 있고,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악화일로다. 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을 온전히 운전자의 실수로 돌리기에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 상대적 사고율이 높다는 통계만으로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 요구도 설득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인들의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은 물론 지자체별 혜택 차이 등 실효적 측면은 깊이 고민할 지점이다. <더팩트>는 총 6회에 걸쳐 국내외 급발진 사례와 판례,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제조물 책임법과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에 대한 한계를 짚어보고 방향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신진환·김정수 기자] 지난 7월 1일 저녁, 사상자 14명을 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운전자가 20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시청역 사고 이후 원인 모를 차량 급발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다른 차들과 심지어 보행자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차량 사고는 '도로 위의 시한폭탄'과도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며 사회문제로 떠오른 차량 급발진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을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종군 민주당 의원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급발진 신고 건수는 △2017년 58건 △2018년 39건 △2020년 25건 △2021년 39건 △2022년 15건 △2023년 24건 △올해 상반기까지 3건이었다. 지난 2010년부터 올 5월까지 약 15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 건수는 총 793건으로 늘어나는데, 2013년(139건)에 정점을 찍은 뒤 하향 추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가 급발진 의심 사고를 감정하는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021년 56건, 2022년 76건, 2023년 117건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적게는 수십 건, 많으면 100건 이상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차량 결함으로 인정된 사례는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총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95만 대다. 여기에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 건수 117건의 비율은 0.00045%에 불과하다. 매우 낮은 확률이다. 다만 차량마다 연식과 주행거리, 쓰이는 부품 등이 다르고 운전자의 평소 운전 습관 등이나 차량 관리 등을 고려했을 때 매우 낮은 수치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2022년 12월 6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할머니와 차량에 탑승한 이도현 군이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졌다. 사진은 사고 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된 차량 모습. /이상훈 씨 제공
2022년 12월 6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할머니와 차량에 탑승한 이도현 군이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졌다. 사진은 사고 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된 차량 모습. /이상훈 씨 제공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고,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이론이 없다. 가구당 1대 이상 자동차를 보유한 실태만 보더라도 소비자가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겪는 일이 지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소비자와 제조사 간 분쟁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다.

자동차 급발진사고는 운전자가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오조작했거나 실제 자동차의 하자·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실제 차량 결함이 인정된 사례가 없는 것은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에 있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제품의 하자와 사고 사이에서 다툼의 여지가 없는 인과관계를 요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사법부는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제조물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소비자의 증명 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와 손해배상에 대한 소송에서 여러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 사고가 자동차 결함이 아니어도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물리치면서도 소비자 측이 제품의 결함 및 그 결함과 손해의 발생과의 사이의 인과관계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입증하기 지극히 어렵다는 대법원의 견해를 인용했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에 대해 형법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도 나오고 있다. 2020년 12월 서울 성북구의 한 대학교 교내 지하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몰다 경비원을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운전자가 지난해 6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정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 등을 미뤄볼 때 차량 결함을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대법원이 급발진사고를 인정한 사례는 없다. 민형사상 법원의 판결이 다른 현실 속에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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