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면 민족 대명절 추석이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많은 여성들은 명절이 고달프다. '워킹맘'이라면 더 그렇다. 일터를 떠난 엄마들은 장거리 이동과 음식 준비로 명절증후군을 호소한다. '유리 천장'을 깨고 여의도 1번지, 국회에 당당히 입성한 여성 의원들의 추석은 어떨까. <편집자 주>

[더팩트 ㅣ 오경희·김지희 기자] "정치인인 저도 남편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여성들이 챙겨야 할 때가 더 많잖아요?"
초선 A 여성 의원의 고백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며 국회에 입성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성이 절대 다수인 정치판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여성 의원들의 목소리다.
뿐만 아니다. 여성 의원들은 명절엔 '1인5역'을 맡아야 한다. 정치인, 아내, 어머니, 며느리, 딸로서 몫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의 배려로, 여느 직장 여성의 고충과 비교한다면 무리일 수도 있지만 이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더팩트>는 여야 여성 의원 대표로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45·비례대표)과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50·서울 중랑구갑) 의원의 추석 나기와 정국 현안(▶[관련 기사][女의도 in 추석 ②] "세월호 정국, 국민에게 추석 선물 못 전해 송구" )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시댁에선 음식하고, 지역구선 인사하고"

서영교 의원은 명절이 늘 바쁘다. 친정과 시댁 식구들을 챙기랴, 지역구 민심을 챙기랴, 광화문 광장에 대여 투쟁에 나서랴 눈코 뜰 새 없다. 다행히 친정과 시댁 모두 지역구인 중랑구여서 한숨을 돌린다.
"추석 전날 만큼은 친정에서 음식 준비를 도와드리고요. 친정에서 시댁은 걸어서 10분. 시어머님이 잘해주셔서 저는 거들기만 할 뿐이죠. 송편도 빚고, 나물, 고기 등 추석상에 올릴 음식을 제가 다 해요. 저, 보기보다 요리 정말 잘해요. 차례를 지내고 나면 식구들과 고스톱도 한판 치고. 하하하."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비서관과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유세본부장 등을 지낸 서 의원은 19대 총선 이후 화제의 인물로 꼽혔다.
서 의원이 출마한 서울 중랍갑은 쟁쟁한 후보들이 난립해 선거 결과를 예단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당시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에서 탈락한 이상수 후보가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새누리당에선 김정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공천에 반발한 이 지역 현역의원 유정현 후보도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발로 뛰며 지역민을 깊이 있게 만난 것이 주효했다는 게 서 의원의 설명이다. 때문에 명절이 돌아오면 '중랑구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에겐 빠질 수 없는 일과다.
"중랑구는 전통시장이 다섯 군데나 있습니다. 남편하고 시장을 돌아요. 남편도 지역유명인사입니다. 주민들이 변호사 떴다고 좋아해요. 같이 주민들께 인사도 드리고, 복돈을 뽑아서 추석상에 올릴 나물도 사고. 우리 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점은 칼국수집인데요. 단돈 2000원. 언제 한 번 시간되면 드셔보세요."
서 의원에 반해 민현주 의원은 가족과 함께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평소 정치 일정이 빠듯한 터라 명절 만큼은 그동한 밀린 숙제를 푼다.
"제가 조금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평소 저의 가사일 부담을 많이 덜어주고 있습니다. 자주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해 명절 때 뵈면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아직 제 아이가 어리다 보니(초등학교 2학년) 아이와 집 근처 공원에서 신나게 놀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도 명절 전에 장 보고, 음식 준비하고, 집 정리하는 등 일의 크기는 평소와는 다르죠."
민 의원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출신으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여성 특보를 맡아 활약했다. 그는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와 '아빠의 달 도입' 등 박근혜 정부의 '여성공약' 관련 법안들을 대표 발의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었던 어려움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민 의원이 '여성 분야'를 파고든 결정적 계기는 '출산'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2005년 12월, 임신한 몸으로 '취업'에 도전했다. 입사 4개월 후 아들을 낳았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를 돌보느라 야근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정각 6시가 되면 바로 퇴근해서 집으로 달려갔어요. 아이를 돌보다 9시쯤 아이가 잠들면 그때부터 새벽 1~2시까지 항상 일했던 것 같아요. 보고서를 마감해야 하는 날엔 밤을 새고 출근한 적도 있었죠. 그 시기 겪었던 어려움이 저로 하여금 여성 정책 개발에 뛰어들게 한 것 같습니다."
◆ "양성평등사회 진입? 여전히 물음표"

국회에선 남성 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 고민은 이들에게도 존재한다. 이는 곧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현재 여성 국회의원은 모두 49명으로 전체 의원의 6.12%다. 제8대 국회까지 각 대마다 여성의원의 숫자가 1~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비례대표 당선자 수가 더 많다.
이는 당내 공천 싸움에서 살아남거나 지역구에서 남성 경쟁자를 누르고 배지를 단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선거구별 여성 의무추천제 등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국회에 진출한 여성의원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 의원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와 기업이 여성들의 1차적 역할을 여전히 가족 내 역할로 제한함으로써 여성의 노동은 남성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여성의 생산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고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유리 천장 효과를 지속시키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우리 정부의 '일-가족' 양립정책은 선진국에 못지 않으나 여성과 기업 등 이해관계에 따른 인식과 문화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우리 사회도 겉으로는 양성평등사회로 진입해 있다고 하는데, 그 내실에 있어선 여전히 물음표"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여성 의원의 강점을 강조했다. "19대 국회가 약 2년 3개월간의 의정활동을 하면서, 여성 의원들에겐 여성 만이 가지고 있는 밝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민생에 직접 다가가는 세심함과 유연함은 주부로서 경험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하는 여성들만의 끈질긴 실천력이 우리들의 의정활동에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여성 의원들의 여성으로서 강점은 인정하면서도 서 의원은 "대다수 여성 의원들이 '워킹맘'으로서 가정과 의정활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보다 많은 여성들이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얘기되고 있는 여성 공천 확대에 대한 문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여성이 행복한 정치, 나아가 국민이 행복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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