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재제청 문제로 법관대표회의 소집 요구도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여권의 조희대 대법원장 국정조사 추진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사법제도 개편을 소설 '동물농장'에 빗대 비판한 일선 판사의 글에 현직 법원장들이 실명 댓글로 공감을 나타내거나,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찬용 인천지법 부천지원 판사가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올린 '소설 동물농장에 관하여'라는 글에는 평판사뿐 아니라 지방법원 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법 부장판사 등의 공감이 이어지고 있다.
성 판사는 글에서 대법관 증원과 법왜곡죄 신설, 대법원장 탄핵 논의와 국정조사 추진 등 일련의 변화를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지배층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계명을 고쳐 쓰는 장면에 빗댔다. 그러면서 "부당한 공격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미연 청주지법원장은 이 글에 댓글을 달아 "조용히 있는 사이 우리도 검찰처럼 공중분해 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느냐"며 "이제는 목소리를 낼 때"라고 힘을 실었다.
이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법부를 비난하며 탄핵 운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자 국정조사를 추진한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배경에는 개별 사건을 맡은 판사가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판단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인가"라며 "그렇다면 저를 비롯한 전체 판사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양근 광주지법·광주가정법원 순천지원 판사도 댓글에서 "법관들이 정말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재판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윤상도 서울북부지법원장과 임해지 대구가정법원장도 성 판사의 글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댓글을 남겼다.
지난 8월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둘러싸고 조 대법원장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었을 때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던 정욱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도 이번 국정조사 추진에는 반대했다.
정 부장판사는 전날 코트넷에 올린 '여권 관계자분들께'라는 글에서 "현실적이지 못한 내란세력 복귀 가능성을 핑계로 헌법상 권한을 남용한다면, 있지도 않은 반국가 세력을 핑계로 계엄을 선포한 내란 우두머리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며 "개별재판에 대한 불만 등을 이유로 사법부를 몰아붙이는 것은 명백한 사법부 독립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법원 내부에서는 국회가 판결을 문제 삼아 조사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일선 법관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고법판사는 "판결이 논란이 됐다고 해서 국회가 조사에 나서는 것은 법원에 대한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관 증원이나 재판소원 도입 때보다 이번 사안을 더 우려하는 이유를 두고 "법률로 사법제도를 바꾸는 것과 달리 국회가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는 것은 법관들이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반면 사법부 독립을 내세우기에 앞서 법원이 국민의 불신을 산 이유부터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병곤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지난 1일 '사법부 독립을 말하기 전에 답해야 할 질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심리한 점과 최근 대법관 제청 절차를 둘러싼 논란을 짚었다.
박 판사는 "법원을 향한 비판과 개혁 요구를 부당한 공격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정작 그 독립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놓칠 수 있다"고 했다.
국정조사에서 무엇을 다루는지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개별 재판의 판단을 국회가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사법행정에 관한 사안은 국회가 권한 범위 안에서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법부와 행정부는 주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신임을 묻지만 사법부에는 그런 절차가 없는 만큼, 법원 역시 다른 국가기관의 견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사법부 독립을 둘러싸고 법관들의 의견 표명이 이어지면서 법원 내부망 내 개별적인 문제 제기를 넘어 내부 공론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법원 안에서는 평소 코트넷에 의견을 드러내지 않던 법관들까지 댓글을 단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부장판사는 "평소 댓글을 잘 달지 않던 고위 법관들까지 성 판사의 글에 공감을 표했다"며 "임시회의 개최를 촉구하는 글이 나온 만큼 논의가 전국법관대표회의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앞서 남준우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코트넷에 '침묵의 의미(전국법관대표회의의 개최를 촉구하며)'라는 글을 통해 대법관 재제청을 둘러싼 갈등이 향후 정권과 관계없이 반복될 수 있다며 임시회의 개최를 촉구했다. 12월7일 정기회의에 앞서 전국 각급 법원 대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취지다.
임시회의는 정기회의와 달리 의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소집할 수 있고, 구성원 130명 중 26명 이상이 회의 목적과 소집이유를 밝혀 요청하면 소집할 수 있다. 회의를 촉구한 남 부장판사는 구성원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임시회의 소집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 하반기 정기 회의는 다음 달 7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다. 회의 안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y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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