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게이트’ 2년여의 변화...'막내형' 이강인이 달라졌다 [박순규의 창]
  • 박순규 기자
  • 입력: 2026.10.10 08:57 / 수정: 2026.10.10 08:59
황인범 곁 지킨 따뜻한 배려, 마드리드에선 9월 MVP…실력과 인성의 동반 성장
발목 통증 딛고 알라베스전 출격 기대
최근 대표팀 내 갈등 속에서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 한국축구의 에이스 이강인이 소속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복귀, 10일 알라베스와 라리가 8라운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리그 2호골을 기록한 오사수나전./마드리드=신화.뉴시스
최근 대표팀 내 갈등 속에서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 한국축구의 에이스 이강인이 소속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복귀, 10일 알라베스와 라리가 8라운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리그 2호골을 기록한 오사수나전./마드리드=신화.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달라지느냐다. 축구선수에게도 성장의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그라운드에서 축구를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라운드 밖에서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차세대 에이스 이강인(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 요즘 보여주는 변화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지난 6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평가전. 한국이 2-0으로 승리했지만 경기장에는 승리의 기쁨만 흐르지 않았다. 대표팀을 둘러싼 이른바 '96라인 은퇴설'과 세대 간 갈등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황인범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 곁에 이강인이 있었다. 그는 자리를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 황인범을 위로하고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하는 순간까지 함께했다.

'막내형'이라는 별명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이로는 여전히 형들의 보살핌을 받는 동생이지만, 마음만큼은 어느새 형들의 아픔을 보듬는 든든한 존재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형들과의 갈등으로 한국 축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막내가 이제는 상처받은 형의 곁을 지키며 말없이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나이는 동생이지만 마음은 형이었다.

그 모습은 골이나 도움처럼 공식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한 번의 패스보다 동료의 곁을 지키는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축구는 11명이 함께하는 경기이고, 동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또한 팀을 위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불과 2년여 전 이강인은 전혀 다른 이유로 여론의 중심에 있었다. 2024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발생한 이른바 '탁구게이트'였다. 주장 손흥민과의 갈등이 알려지면서 젊은 천재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실력과 별개로 대표선수에게 요구되는 책임감과 인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9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이강인이 크로스를 올리고 있다./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9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운데 이강인이 크로스를 올리고 있다./서울월드컵경기장=박헌우 기자

당시의 잘못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의 잘못으로 한 사람의 미래까지 재단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잘못이라는 뜻이다. 이강인은 이제 실력으로는 팀을 이끄는 에이스가 되고, 마음으로는 동료를 보듬는 '막내형'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 대표팀 소집에서 골이나 도움보다 더 오래 기억될 장면인지 모른다.

이강인의 최근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대표팀 소집 기간 그는 민감한 내부 갈등에 대해 불필요한 말을 보태지 않았다. 대신 태극마크의 의미를 강조하고 동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침묵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지만, 말을 아껴야 할 때와 행동으로 마음을 전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은 성숙함의 한 모습이다.

이강인은 이제 국가대표팀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선수다. 손흥민이 오랫동안 감당해온 주장과 에이스의 무게가 무엇인지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과 존경받는 선수가 되는 것은 반드시 같은 길이 아니다. 그 두 길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강인의 이러한 변화가 소속팀에서의 도약과 맞물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여름 파리 생제르맹(PSG)을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이강인은 예상보다 빠르게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 라리가 7경기에 모두 출전해 6차례 선발로 나섰고, 469분 동안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리그 2위로 올라선 팀의 상승세에도 적지 않은 몫을 했다.

말라가와의 개막전에서 터뜨린 왼발 결승골은 라리가 '8월 이달의 골'로 선정됐다. 오사수나전에서는 오른발로 시즌 2호골을 기록했다. 주로 왼발에 의존하던 공격 패턴에서 벗어나 오른발 마무리까지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국가대표팀 소집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이강인이 8일(현지시간) 밝은 표정으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아틀레티고 마드리드
국가대표팀 소집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이강인이 8일(현지시간) 밝은 표정으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아틀레티고 마드리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플레이의 내용이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지키고 압박을 벗어나 동료에게 공격의 길을 열어준다. 필요하면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해 패스의 연결고리가 되고, 득점 기회에서는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한다.

이제 이강인의 가치를 골과 도움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졌다. 앙투안 그리에즈만이 떠난 아틀레티코에서 공격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레알 마드리드와의 첫 '마드리드 더비'에서도 그랬다.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89분 동안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축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자신의 기록보다 팀 전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능력이 성장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팬들도 화답했다. 이강인은 최근 아틀레티코 구단 팬들이 선정한 '9월 이달의 선수'로 뽑혔다. 화려한 이름값과 냉혹한 경쟁이 공존하는 유럽 명문 구단에서 입단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얻어낸 인정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를 넘어 팀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진정한 시험은 이제부터다. 이강인은 10일 오후 11시 15분(한국시간) 스페인 비토리아의 에스타디오 데 멘디소로차에서 열리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 라리가 8라운드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발목 통증으로 전반만 뛰었던 만큼 몸 상태가 관건이다.

다행히 스페인 현지에서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팀 훈련에 복귀하면서 출전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달 오사수나전 이후 약 3주 만의 시즌 3호골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다. 알라베스는 개막 후 7경기에서 3승 2무 2패, 승점 11점으로 6위에 올라 있다. 특히 7경기에서 단 6골만 허용한 수비 조직력이 강점이다. 5승 1무 1패, 승점 16점으로 2위를 달리는 아틀레티코에도 결코 쉬운 원정이 아니다.

이강인에게는 상대의 촘촘한 수비를 흔들고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14일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맞대결도 예정돼 있다. 시즌 초반의 반짝 활약을 넘어 명문 구단의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다.

여기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대표팀에서의 헌신과 소속팀에서의 성공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동료를 이해하는 마음은 패스의 방향을 바꾸고, 책임감은 공을 빼앗긴 뒤 다시 뛰는 발걸음을 바꾼다. 사람의 성장은 결국 축구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인생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과거의 모습에 갇히지 않고 오늘의 선택으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한때 '탁구게이트'의 상처를 안고 비난의 중심에 섰던 이강인은 이제 다른 모습으로 평가받을 기회를 만들고 있다. 동료가 힘들 때 곁을 지키고, 팀이 어려울 때 공을 책임지고, 팬들의 기대 앞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려 한다.

25세의 이강인은 아직 완성된 선수가 아니다.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고, 비판받을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알라베스전에서 시즌 3호골을 터뜨린다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강인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득점 이상의 무엇이다. 축구도 잘하고 사람도 훌륭한 선수, 자신의 재능만큼 책임감도 큰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골은 스코어보드에 남지만, 성숙함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이강인의 진짜 전성기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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