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레티코 새 7번의 강렬한 첫인상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시작은 절반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 2026~2027시즌 스페인 라리가 개막전에서 이강인(25)이 보여준 30여 분이 그랬다.
후반 12분, 0-0으로 답답하게 흘러가던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의 피치에 이강인이 들어섰다. 그리고 불과 13분 뒤인 후반 25분.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든 뒤 왼발로 감아 찬 공이 말라가 골문을 갈랐다. 이강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식 데뷔전 첫 골이자 시즌 첫 승을 열어젖힌 결승골이었다. 알렉스 바에나의 85분 추가골까지 보탠 아틀레티코는 2-0으로 승리했다.
골 하나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경기를 바꿨다는 사실이다.
이강인이 투입되기 전까지 아틀레티코는 승격팀 말라가의 촘촘한 수비벽 앞에서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후반 12분 이강인과 바에나, 줄리아노 시메오네를 동시에 투입했다. 그 순간 경기의 속도가 달라졌다. 이강인은 공을 받으면 옆이 아니라 앞으로 향했다. 좁은 공간에서 방향을 틀고, 수비수를 끌어낸 뒤 슛과 패스를 선택했다.

시메오네가 원하는 축구와 이강인의 장점이 만나는 지점이 보였다.
시메오네 감독은 경기 뒤 이강인을 두고 팀이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헌신적인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강인 역시 교체 투입 직전 감독으로부터 상대 수비의 라인 사이 공간을 이용하고 기회가 생기면 슛하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감독의 주문을 그라운드에서 곧바로 골로 바꿨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더 흥미로운 것은 스페인 언론의 반응이다.
이강인이 PSG에서 아틀레티코로 옮길 때 일각에서는 그의 영입을 한국 및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 효과’와 연결해 바라봤다. 그러나 개막전 뒤 스페인 매체 AS는 이강인이 단순히 유니폼을 파는 선수가 아니라는 취지로 평가했다. 또 그리즈만이 떠난 뒤 7번을 물려받은 이강인이 창조성과 과감함으로 경기를 바꿨다고 조명했다.
축구선수에게 편견을 깨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설명이 아니라 경기력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아틀레티코가 이강인에게 준 등번호가 하필 ‘7번’이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오랫동안 이 번호의 주인은 앙투안 그리즈만이었다. 아틀레티코 구단 역사에 깊이 각인된 번호다. 이강인은 PSG를 떠나 2031년까지 계약하면서 그 7번을 건네받았다. 현지 언론이 추정한 이적료도 3500만~4000만 유로에 이른다. 단순한 ‘아시아 마케팅용 선수’에게 맡길 번호도, 투자할 금액도 아니다.

묘한 인연도 있다.
메트로폴리타노가 문을 연 2017년 아틀레티코가 이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던 상대 역시 말라가였다. 당시 승리를 결정한 선수는 그리즈만이었다. 9년 뒤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말라가를 상대로, 그리즈만의 7번을 물려받은 한국 선수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제법 근사한 축구의 서사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개막전 한 경기로 이강인이 그리즈만의 후계자가 됐다고 단정한다면 지나친 성급함이다. 상대는 승격팀 말라가였고 시즌은 이제 1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시메오네의 축구에서는 공격 재능만으로 주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수비 가담과 압박, 전환 속도, 동료와의 거리 유지까지 해내야 한다.
그 점에서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오히려 골보다 고무적이다. 이강인은 기술만 과시하지 않았다. 공을 잃은 뒤 다시 압박했고,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으며 팀의 템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시메오네가 그를 평가하며 ‘헌신’을 먼저 이야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험은 금세 찾아온다. 아틀레티코는 23일 비야레알을 시작으로 세비야와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 소시에다드 등을 거쳐 9월 20일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마드리드 더비를 치른다. 진짜 평가는 강팀과의 경기, 그리고 선발로 70~90분을 소화해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한국축구에도 이강인의 성장은 중요하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실패 이후 한국축구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시스템과 지도력, 전술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결국 대표팀의 미래를 그라운드에서 구현해야 할 선수는 이강인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다.
다만 이강인 한 사람에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선수가 한 명 등장한다고 국가대표팀이 저절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재목이 있어도 집을 제대로 짓지 못하면 소용없다. 이강인의 성공은 한국축구 시스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 하나 더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PSG에서 이강인은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었지만 늘 경기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틀레티코에서의 도전은 그래서 다르다. 이제는 ‘우승팀의 좋은 선수’를 넘어 자신이 승리를 만드는 선수가 돼야 한다.
그 첫날, 그는 그렇게 했다.
9년 전 말라가의 골문을 열었던 그리즈만의 7번은 이제 한국인 이강인의 등에 있다. 그리고 2026년 8월 19일 밤(현지시간), 메트로폴리타노의 7번은 자신의 첫 번째 답을 왼발로 내놓았다.
"나는 팬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왔다"고 했던 스물다섯 살의 한국인. 첫날만큼은 그 약속을 완벽하게 지켰다. 이제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마법 같은 데뷔골’이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마법이 일상이 되는 과정이다.
이강인의 진짜 아틀레티코 이야기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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