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10골 혈투, 음바페의 ‘22골’보다 빛난 잉글랜드의 ‘품격’ [박순규의 창]
  • 박순규 기자
  • 입력: 2026.07.19 08:33 / 수정: 2026.07.19 15:29
‘벨링엄 PK 양보’ 잉글랜드, 프랑스 6-4 완파…60년 만의 최고 성적 ‘유종의 미’
잉글랜드의 부카요 사카(가운데)가 19일 프랑스와 2026 북중미 월드컵 3~4위전에서 후반 해트트릭을 기록한 뒤 주드 벨링엄(왼쪽)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마이애미=AP.뉴시스
잉글랜드의 부카요 사카(가운데)가 19일 프랑스와 2026 북중미 월드컵 3~4위전에서 후반 해트트릭을 기록한 뒤 주드 벨링엄(왼쪽)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마이애미=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결승 진출이 좌절된 뒤 치르는 월드컵 3·4위전은 흔히 ‘패자들의 경기’로 불린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감독은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며, 팬들의 관심도 결승전에 쏠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19일 프랑스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3·4위전에서 축구가 순위와 트로피만으로 평가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토마스 투헬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는 프랑스를 6-4로 꺾고 대회 3위를 차지했다. 1966년 자국 월드컵 우승 이후 60년 만에 거둔 최고 성적이다.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1-2로 역전패하며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좌절을 핑계로 마지막 경기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진가는 경기 시작과 함께 드러났다. 해리 케인과 주드 벨링엄을 선발에서 제외하고도 전반 3분 데클란 라이스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에즈리 콘사와 부카요 사카가 연속골을 터뜨렸다. 전반에만 4-0. 공격력보다 돋보인 것은 태도였다. 모든 선수가 적극적으로 압박했고, 빈 공간을 향해 뛰었으며, 프랑스가 느슨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반면 프랑스는 경기 초반 팀의 승리보다 킬리안 음바페의 득점왕 경쟁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은 공을 잡을 때마다 음바페를 찾았고, 공격의 흐름은 단조로워졌다. 음바페는 후반 멀티골을 터뜨리며 대회 10골, 월드컵 통산 22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단일 대회 공격포인트도 14개로 늘렸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밤이었지만, 프랑스라는 팀에는 씁쓸한 패배가 남았다.

잉글랜드와 3~4위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대회 10호골로 득점왕 레이스에서 단독 선두로 나선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마이애미=AP.뉴시스
잉글랜드와 3~4위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대회 10호골로 득점왕 레이스에서 단독 선두로 나선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마이애미=AP.뉴시스

잉글랜드는 후반 들어 프랑스에 3골을 연달아 허용하며 4-3까지 추격당했다. 전반의 우세에 취했다면 무너질 수도 있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후반 42분 사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해트트릭을 완성했고, 추가시간에는 교체 투입된 벨링엄이 자신의 대회 7호골로 승부를 마무리했다.

특히 벨링엄이 페널티킥을 사카에게 양보한 장면은 잉글랜드가 이날 무엇을 위해 뛰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자신의 월드컵 최다골 욕심보다 동료의 해트트릭과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시 찾아온 기회에서는 직접 골을 넣어 책임을 다했다. 양보와 책임이 함께 존재할 때 팀은 강해진다.

프랑스도 후반에만 4골을 터뜨리며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음바페와 브래들리 바르콜라, 우스만 뎀벨레가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디디에 데샹 감독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기에는 전반의 무기력과 수비 붕괴가 너무 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처럼, 초반에 잃어버린 집중력은 후반의 분전만으로 되돌리기 어려웠다.

잉글랜드는 전반에만 4골을 넣으며 프랑스의 느슨한 마음을 응징했다. 잉글랜드 부카요 사카가 팀의 네 번째 골을 넣는 장면./마이애미=AP.뉴시스
잉글랜드는 전반에만 4골을 넣으며 프랑스의 느슨한 마음을 응징했다. 잉글랜드 부카요 사카가 팀의 네 번째 골을 넣는 장면./마이애미=AP.뉴시스

잉글랜드가 얻은 것은 동메달만이 아니다. 실패한 뒤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를 세계에 보여줬다. 우승컵이 사라졌다고 해서 국가대표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팬들이 지켜보고, 유니폼의 역사가 남으며, 다음 대회를 위한 기준이 만들어진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중세 116년간 이어진 백년전쟁의 역사적 앙금만큼이나 축구장에서도 서로를 반드시 넘어야 할 벽으로 여겨왔다. 비록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 밀려 우승컵을 들어 올리진 못했으나, 이 경기에는 30억 원의 상금 차이를 넘어선 국가적 자존심과 명분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잉글랜드로서는 1966년 자국 대회 우승 이후 60년 만에 맞이한 최고 성적의 기회였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에서 해리 케인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눈물을 흘렸던 잔인한 기억을 설욕할 단 하나의 무대를 아름답게 살려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한 뒤에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결승 진출 실패 뒤에도 끝까지 뛰고, 동료에게 기회를 양보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골을 향해 달려간 잉글랜드는 3위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트로피는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의 결승전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축구의 품격은 결승전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잉글랜드는 승자도 패자도 쉽게 집중력을 잃는 3·4위전에서 '축구 종가'가 지켜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10골이 오간 난타전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단순한 6-4의 스코어가 아니다. 끝까지 경기를 존중한 팀만이 얻을 수 있는 명예였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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