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오버뷰] '13골' 퐁텐의 벽 무너지나...메시·음바페·홀란·케인 초반 '폭주'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06.19 00:00 / 수정: 2026.06.19 00:00
초반부터 터진 골 폭풍, 48개국 확대로 늘어난 '8경기'
1970년 게르트 뮐러 이후 끊긴 '두 자릿수 득점왕' 북중미에서 재림할까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10)가 2026 북중미월드컵 J조 조별리그 첫경기 알레지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캔자스시티(미 미주리주)=AP 뉴시스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10)가 2026 북중미월드컵 J조 조별리그 첫경기 알레지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캔자스시티(미 미주리주)=AP 뉴시스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조별리그 초반 레이스부터 축구 역사의 타임라인을 흔들고 있다. 대회 개막과 동시에 노르웨이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 이상 2골), 그리고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 3골)가 각자의 첫 무대에서 일제히 골 폭풍을 몰아쳤다. 이번 대회는 조별리그 첫 로테이션부터 역대 가장 뜨겁고 과열된 화력전의 서막을 열어젖힌 셈이다.

무엇보다 EPL(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홀란, 라리가의 음바페, 분데스리가의 케인 등 유럽 3대 빅리그 대표 골잡이들이 첫 경기부터 나란히 멀티골을 쏘아 올리며 리그의 자존심 대결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 조별리그 첫 로테이션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 리오넬 메시는 알제리를 상대로 선발 출전해 단숨에 해트트릭을 신고하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제를 그라운드 위에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반면 콩고민주공화국전에 출전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만이 유일하게 첫 경기에서 침묵하며 명암이 갈렸다.

이러한 초반 화력전은 축구 팬들에게는 짜릿한 즐거움이지만, 기록을 추적하는 이들에게는 역사적 거장들의 발자취를 소환하는 계기가 된다. 월드컵 역사상 이토록 초반부터 유력 후보들이 혈전을 벌였던 사례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이 화력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불멸의 기록'과 마주하게 될까.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이 18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대회 조별리그 L조 1차전에서 포효하고 있다. /댈러스=AP·뉴시스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이 18일(한국 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대회 조별리그 L조 1차전에서 포효하고 있다. /댈러스=AP·뉴시스

◆ 초반부터 뜨거웠던 역사적 골 폭발의 서사

대회 극초반부터 득점 레이스가 폭발했던 순간은 월드컵 역사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가장 먼저 소환되는 기억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다. 당시 세계 축구를 지배하던 헝가리의 산도르 코치시는 첫 경기 대한민국전 해트트릭에 이어 서독전에서 4골을 몰아치며 단 2경기 만에 7골을 쌓아 올렸다. 전쟁 직후의 한국은 당시 월드컵에 처음 참가해 코치시뿐만 아니라 페렌츠 푸스카스에게 두 골을 내주는 등 총 9골을 허용, 0-9로 참패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코치시는 이 대회에서 총 11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서독의 막스 몰록 등 당대 내로라하는 공격수들 역시 이에 질세라 해트트릭을 포함한 멀티골로 맞불을 놓으며 대회 초반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총 26경기 140골로 경기당 평균 5.38골이 터진,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었던 대회의 서막이었다.

현대 축구로 넘어오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이번 대회와 가장 닮아 있다. 개막전에서 브라질의 네이마르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리며 포문을 열자, 이튿날 네덜란드의 아르연 로벤과 로빈 판 페르시가 각각 멀티골로 응수하며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을 5-1로 초토화했다. 직후 경기에서는 독일의 토마스 뮐러가 포르투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작렬, 4-0 폭격을 주도하며 상대에 치욕을 안겼다. 첫 경기부터 슈퍼스타들이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며 골 폭풍을 주고받은 역대급 연쇄 폭발이었다.

킬리안 음바페(왼쪽)와 엘링 홀란이 17일(한국시간) 2026 북중미 월드컵 I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각각 멀티골을 터트리며 음홀대전의 서막을 알렸다. /AP.뉴시스
킬리안 음바페(왼쪽)와 엘링 홀란이 17일(한국시간) 2026 북중미 월드컵 I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각각 멀티골을 터트리며 '음홀대전'의 서막을 알렸다. /AP.뉴시스

◆ 위대한 전설들의 발자취, 그리고 새로 쓰이는 누적의 역사

이번 초반 레이스가 유독 경이로운 이유는, 이 화력이 단순히 한 대회 득점왕을 넘어 '월드컵 통산 개인 최다 골'이라는 축구사 최고 존엄의 기록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대회 첫 경기였던 알제리전에서 역사적인 해트트릭을 작렬한 리오넬 메시는 통산 16골 고지에 오르며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보유했던 월드컵 통산 개인 최다 골 기록과 마침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제 메시의 발을 떠난 공이 골망을 흔들 때마다 월드컵의 역사는 새로 쓰이게 된다.

하지만 이 위대한 서사에 긴장감을 더하는 것은 그 뒤를 단 두 골 차 무서운 속도로 추격 중인 킬리안 음바페(통산 14골)의 존재다. 이번 대회는 메시가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며 왕좌를 공고히 하느냐, 혹은 전성기에 접어든 음바페가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대역전극을 써 내려가느냐를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 됐다.

이번 북중미월드컵 대회 전까지 16골로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던 전 독일 축구국가대표 미로슬라프 클로제 / 사진출처=독일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더팩트DB)
이번 북중미월드컵 대회 전까지 16골로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던 전 독일 축구국가대표 미로슬라프 클로제 / 사진출처=독일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더팩트DB)

◆ 범접할 수 없는 벽: 단일 대회 최다 골 기록

역대 월드컵 단일 대회 최다 골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공격수 쥐스트 퐁텐이 남긴 13골이다. 그는 전 대회 우승팀 서독과의 3·4위전 4골을 포함해 대회 종료까지 6경기 동안 이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산도르 코치시에 이어 월드컵 역사상 두 번째로 단일 대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자, 역대 최고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프랑스는 퐁텐의 활약에 힘입어 최종 3위를 차지했다.

2위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의 산도르 코치시가 기록한 11골이며, 3위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게르트 뮐러(서독)가 기록한 10골이다. 이 세 선수가 각 대회 두 자릿수 득점으로 득점왕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해당 대회에서 각각 '단일 대회 해트트릭 2회'라는 경이로운 몰아치기를 달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58년 퐁텐이 남긴 '6경기 13골'은 현대 축구에서 사실상 깨지기 불가능한 기록으로 여겨져 왔다. 당시 10대의 나이로 세계 무대에 등장해 '축구 황제'의 강림을 알렸던 브라질 펠레의 득점 수(6골. 득점순위 2위)와 비교해 보아도 퐁텐의 13골이 얼마나 압도적인 기록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다. 퐁텐은 1953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단 21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한 그야말로 인간계의 득점 기계였다.

1970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게르트 뮐러가 걸출한 결정력으로 10골을 터뜨렸으나 퐁텐의 기록에는 세 걸음이 모자랐다. 대신 뮐러는 다음 대회인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통산 14골 고지에 올랐고, 브라질 호나우두가 2006년 통산 15골을 넣기 전까지 30년 이상 '월드컵 통산 최다 골 보유자' 지위를 유지했다.

21세기 들어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 득점왕 호나우두와 2022년 카타르월드컵 등점왕 음바페가 나란히 8골로 분전했으나, 단일 대회 두 자릿수 득점의 벽조차 넘지 못했던 것이 이 기록들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콜롬비아의 루이스 디아스(맨 왼쪽)가 18일(한국시간)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K조 1차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후반 20분 추가 골을 넣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월드컵이 48개국 체제로 확대개편된 이번 월드컵에서 처녀 출전했다./ 멕시코시티(멕시코)=AP뉴시스
콜롬비아의 루이스 디아스(맨 왼쪽)가 18일(한국시간)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K조 1차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후반 20분 추가 골을 넣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월드컵이 48개국 체제로 확대개편된 이번 월드컵에서 처녀 출전했다./ 멕시코시티(멕시코)=AP뉴시스

◆ 48개국 체제의 확장, '13골의 벽'을 흔들다

그러나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그 완강하던 기록의 벽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를 품고 있다. 바로 48개국 체제로의 전환이다.

기존 32개국 체제에서는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치를 수 있는 최대 경기 수가 7경기였으나, 이번 대회부터는 32강 토너먼트가 신설되면서 결승 무대를 밟는 팀은 최대 8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산술적으로 세계 최고의 피니셔들에게 최전방에서 골을 사냥할 기회가 한 경기 더 주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참가국 확대로 인해 조별리그 및 토너먼트 초입 단계에서 전력 격차가 발생하는 매치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홀란, 음바페, 메시, 케인처럼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 공격수들이 특정 경기에서 화력을 집중해 '몰아치기'에 성공한다면, 게르트 뮐러 이후 맥이 끊겼던 단일 대회 두 자릿수 득점은 물론, 70년 가까이 굳건했던 쥐스트 퐁텐의 13골 대기록마저 사정권에 들어올 수 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득점왕 레이스는 단순한 개인 타이틀 경쟁이 아니다. 무대의 확장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황혼기에 접어든 레전드들이 쌓아 올린 '누적의 가치'와 전성기를 맞이한 괴물들이 뿜어내는 '순간의 파괴력'이 충돌하는 거대한 서사시의 시작이다. 초반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이 레이스의 끝에서, 과연 축구 역사는 어떤 페이지를 새롭게 작성하게 될지 전 세계의 시선이 북중미의 그라운드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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