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균적으로 한 해 데뷔하는 K팝 그룹은 40팀 내외다. 단순 가정으로 팀당 멤버가 5명이라고 치면 매년 200여 명의 청년이 새롭게 가요계에 발을 들이는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중에서 살아남는 그룹은 고작 두세 팀에 불과하다. 반면 꿈을 접고 무대를 떠나는 청년은 해마다 수백 명의 청년에 이르지만 이들을 위한 정보는 많지 않다. '두 번째 삶'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해 먼저 사회에 정착한 선배들과 만나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K팝이 한국 대중음악의 메이저 신으로 자리 잡은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사이 가요계에는 수천 팀의 K팝 그룹이 저마다의 포부를 안고 데뷔 신고식을 치렀으나 그중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그룹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데뷔라는 출발선에도 서지 못하고 꿈을 접은 사례까지 고려하면 지금까지 수만 명의 청년들이 무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K팝 그룹 출신이라고 해서 다른 대우를 해줘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이들 중 상당수가 정상적인 학업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연습생'은 K팝 기획사의 기본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고 10대 초중반 청소년들이 연습생으로 지내며 학업보다 춤과 보컬 레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은 K팝 업계에서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일반적인 청소년과 달리 중, 고, 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대학 진학 이후 자연스럽게 접하는 취업 관련 정보나 지원정책도 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연예계가 아닌 다른 삶을 택한 K팝 그룹 출신들은 이 정보의 불균형을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에 큰 장벽으로 꼽았다.
그룹 골든차일드 출신으로 현재 부산 해운대에서 실내사격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지범(27) 씨는 "K팝 그룹으로 활동할 때는 그런 내용을 전혀 접하지도 못했고 개인적으로도 알지 못했다. 매장 운영이나 회계 등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사회에 나와서 직접 나와 부딪히면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각 기획사에서도 사회화 과정을 도울 기본적인 정보 제공이나 교육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소상공인 경영안정 바우처를 한번 지원받은 적이 있다"며 "K팝 그룹으로 활동할 때는 이런 정책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K팝 업계에서 쭉 생활을 이어가는 분들도 있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시작하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에 도움 되지 않을까 싶다. 연습생이나 소속 아티스트에게 최소한의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부터 연습생을 시작해 알비더블유,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등 여러 회사를 경험한 변채원(31) 씨는 "2019년까지 9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다. 여러 회사를 경험했지만 사회로 나왔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정책과 시스템이 있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변 씨는 서울 용산구 용리단길에서 카페 겸 바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이 액 6~7억 원에 달할 정도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변 씨는 이르면 8월 규모를 확장해 2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일산에서 무일푼으로 카페를 시작한 변 씨가 '성공한 사장님'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청년 창업 지원이 자리한다.
변 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청년 창업 지원금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낸 것이 통과돼 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며 "애초에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생각도 없었는데 그 순간 그 광고가 뜨고 내가 그것을 본 건 정말 우연이고 기적이다. 정부나 단체에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과 정책이 많은데 이런 정보를 전할 채널이나 교육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선정적인 개인방송이나 유흥업소 등의 유혹이나 제안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이같은 정보 전달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적절한 교육이 병행되면 유혹의 굴레에 빠질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변 씨는 "아무래도 여성 연습생은 좋지 않은 권유도 많이 받는다"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본인이 생각을 잘해야 한다. 당장의 수익을 보고 유혹에 빠지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이 바라는 것은 특혜나 혜택이 아니다. 단지 자의든 타의든 다른 삶을 찾아야 하는 K팝 그룹이 해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여 이로 인한 사회적 충격이 조금이나마 완화하자는 이야기다.
보이그룹 스매시의 멤버로 활동하다 해체 후 파티시에로 자리 잡은 주영석(39) 씨는 "2008년 데뷔해 2015년까지 K팝 그룹으로 활동했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제빵업을 시작했다. 낮에는 제과제빵을 배우고 밤에는 식당이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투잡, 쓰리잡을 생활을 몇 년간 한 끝에야 첫 가게를 오픈할 수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지금은 나라에서 다양한 지원 정책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런 정책이 있다는 사실이나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시작할 때부터 관련 정보를 알고 있어 도움을 받았다면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데뷔한 모든 K팝 그룹이 다 성공하고 잘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이 조금 더 원활하게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획사에서 관련한 교육을 도입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윤동환 위원은 "어린 시절부터 K팝 그룹으로 데뷔를 위해 연습생 생활을 이어온 청년들은 자기가 어떤 직업에 재능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것을 찾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 시간을 줄여 사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연습생과 K팝 그룹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 현재는 전체 연습생이 몇 명이고 연예계를 떠나 새로운 길을 찾는 청년이 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먼저 연습생 계약과 함께 별도 DB에 등록을 하는 등의 시스템을 갖추고 규모가 파악돼야 정책을 세우든 지원을 하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단계적인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말하는 지원이나 시스템 도입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당연히 당사자의 노력이다. K팝 그룹을 떠나 사회에 자리 잡은 이들은 대부분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쌓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까지 데뷔 준비 못지않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이를 통해 터득한 노하우를 들어봤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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