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해체 그다음의 삶②]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법
  • 최현정 기자
  • 입력: 2026.06.02 00:00 / 수정: 2026.06.02 00:00
새 직업 선택 시 자영업 비율 높아
직장인 취업 시 선입견이 걸림돌
어떤 직종이든 부단한 노력은 필수
그룹 BTL 출신의 이상현 씨는 현재 S사에 다니며 AI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상현 씨는 K팝 그룹 출신 중 보기 드물게 직장인의 길을 선택한 사례다. 사진은 이상현 씨의 직원 프로필이다./본인제공
그룹 BTL 출신의 이상현 씨는 현재 S사에 다니며 AI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상현 씨는 K팝 그룹 출신 중 보기 드물게 직장인의 길을 선택한 사례다. 사진은 이상현 씨의 직원 프로필이다./본인제공

평균적으로 한 해 데뷔하는 K팝 그룹은 40팀 내외다. 단순 가정으로 팀당 멤버가 5명이라고 치면 매년 200여 명의 청년이 새롭게 가요계에 발을 들이는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중에서 살아남는 그룹은 고작 두세 팀에 불과하다. 반면 꿈을 접고 무대를 떠나는 청년은 해마다 수백 명의 청년에 이르지만 이들을 위한 정보는 많지 않다. '두 번째 삶'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해 먼저 사회에 정착한 선배들과 만나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K팝 그룹 출신들이 연예계를 떠나 선택하는 직업은 대다수가 자영업이다.

이들이 자영업을 선택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데뷔를 한 경우 대외적으로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마케팅적인 이점이 있고, 팬미팅 등으로 다져진 경험은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 분야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룹 골든차일드 출신으로 부산 해운대에서 실내사격장을 운영 중인 김지범(27) 씨는 "서비스 업종에서는 K팝 그룹 경험이 있는 분들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며 "아무래도 사람을 많이 만난 경험이 있어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센스 같은 게 있다. 이런 점은 크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9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접고 서울 용산구 용리단길에 카페를 창업한 변채원(31) 씨도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그때도 카페처럼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업종을 선호했다.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만나는 게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접근이 쉽다고 해서 노력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치열한 노력 끝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룹 스매시 출신으로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자신의 베이커리를 운영 중인 주영석(39) 씨는 "2015년 그룹이 해체되고 당장 생계가 어려워 2016년쯤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제빵을 선택한 건 단순히 당시 급여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현재 주 씨는 MBN 제과제빵 서바이벌 프로그램 '천하제빵 : 베이크 유어 드림'에 출연해 최종 5위를 차지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은 정상급 파티시에다. 그는 이 위치까지 오기까지 K팝 그룹으로 활동할 때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룹 스매시 출신의 주영석 씨는 MBN 천하제빵 : 베이크 유어 드림에 출연해 최종 5위에 오를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 받았다./MBN
그룹 스매시 출신의 주영석 씨는 MBN '천하제빵 : 베이크 유어 드림'에 출연해 최종 5위에 오를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 받았다./MBN

주 씨는 "빨리 내 가게를 차리기 위해 밤에는 배달과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는 생활을 수년간 했었다"며 "또 제빵 교육을 받을 때도 경험이 없어서 함께 교육을 받던 인원 중 꼴찌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이들을 지휘하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지난 10년간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일반 기업으로의 취업이 아니라 자영업을 선택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예비 직장인의 경우 대학에 진학해 각종 스펙을 쌓고 다양한 취업 관련 정보를 손에 쥐고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반면 긴 연습생 생활을 거친 이들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다면 취업의 문턱을 넘는 것도 꼭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보이그룹 BTL의 멤버로 활동하다 뒤늦게 취업 시장에 뛰어든 이상현(34) 씨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해 현재는 S사에서 AI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이 씨는 "연습생부터 그룹 활동까지 모두 합하면 11년 동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소속감 있는 직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며 "정해진 급여를 받고 루틴이 있는 일정한 삶을 살고 싶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물론 늦게 시작한 만큼 입사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다행히 집에서 아버지가 대학은 무조건 가라고 해서 그룹 활동을 할 때도 대학교는 입학한 상태였다. 딱 한 한기만 다니고 계속 휴학상태였는데 대학교에 복귀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스펙을 쌓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씨는 "재미있게도 연습생 경험이 취업을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연습생도 경쟁이고 서바이벌이다 보니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노력해야 한다. 그 경험을 학업에 적용해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수업을 받고 공부하는 루틴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주영석 씨는 현재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개인 베이커리를 운영 중이다. 주 씨는 현재 가게를 오픈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본인제공
주영석 씨는 현재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개인 베이커리를 운영 중이다. 주 씨는 현재 가게를 오픈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본인제공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도 지난했지만 이 씨가 정말로 고충을 느낀 지점은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였다. 이 선입견은 이 씨뿐만 아니라 K팝 그룹 출신들이 일반 기업에 취업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로 작용했다.

이 씨는 "처음 지원서를 냈을 때 거의 모든 기업에서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고 그나마 면접을 보러 간 곳은 '왜 아이돌 그만 뒀나', '아이돌 출신이 왜 회사에 지원했나' 딱 두 가지만 물어보고 다른 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력이 독특하니까 호기심에서 부른 게 아닌가 싶다. 직장인으로서는 독특한 이력이고 진정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씨는 "접근법을 달리해 'K팝 그룹으로서 팬과 만나고 소통한 경험이 영업에 도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한 끝에 한 기업 홍보마케팅부서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하고 신입사원이 되니까 많은 사람이 나를 '구경'하러 왔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은 이 씨도 예상한 것이었으나 그를 괴롭힌 것은 '아이돌이니까'라는 시선이었다. 이 씨는 "내가 일을 못하면 '아이돌 출신이니까 역시 이런 것도 못 하네'가 되고 일을 잘해도 '아이돌 출신인데 이런 것도 잘하네'가 되더라.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처음 입사한 곳은 K팝 그룹 활동 이력도 밝히고 회사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었는데 현재 회사로 이직할 때는 이력서에 따로 적지 않았다. 물론 입소문을 타고 내가 K팝 그룹 출신인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선입견을 희석시키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사람마다의 성향차이일 수도 있지만 혹시 내가 부족해 보일까 봐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고 그간 노력을 알렸다.

여러 고충도 있었지만 이 씨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길을 가려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현재 이 씨는 직장은 물론 가정도 꾸리며 염원하던 '안정적인 삶'을 손에 넣었다. 이 씨는 자신이 취업을 준비하며 겪은 경험을 모아 책으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취업을 선택한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줄이기 바랐다.

이상현 씨는 직장인의 삶을 선택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아이돌 출신이니까라는 선입견을 꼽았다. 사진은 이 씨가 BTL로 활동할 당시 모습이다./본인제공
이상현 씨는 직장인의 삶을 선택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아이돌 출신이니까'라는 선입견을 꼽았다. 사진은 이 씨가 BTL로 활동할 당시 모습이다./본인제공

이 씨는 "만약 직장인에 생각이 있다면 적어도 고등학교는 졸업하는 게 좋다. 또 데뷔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너무 늦지 않게 도전의 끝을 정해놓았으면 한다. 아무리 K팝 그룹이 젊은 나이에 시작한다고 해도 어느 기업이나 마지노선이 있다. 그 루트에 맞게 스펙도 쌓고 공부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사실 취업 교육이나 정부 정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룹 활동을 했다는 것을 핑계 삼지 말고 본인이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정보를 찾아보는 능동적인 태도도 필요하다"라며 "물론 데뷔해서 성공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안 되겠다'고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할 때는 정말 절실하게 해야겠지만 끝이라고 느꼈을 때 돌아갈 차선책은 항상 생각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 씨는 K팝 출신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실상 K팝 그룹 출신들에게 가장 많은 선택을 받는 길은 해체나 은퇴 후에도 어떻게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씨는 "함께 활동했던 멤버들은 모두 댄스 트레이너나 작곡가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남아있다"고 말했고 김지범 씨와 변채원 씨도 "기회가 되면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홀로 남아 꿋꿋이 활동을 이어가는 사례도 들어봤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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