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피의 기피'까지…내란 재판 지연 논란
  • 선은양 기자
  • 입력: 2026.05.21 00:00 / 수정: 2026.05.21 00:00
윤석열·김용현 등 2심 재판부 기피신청
간이기각 외엔 재판지연 막을 방법 없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잇따라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내면서 기피 제도가 재판 지연 전략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잇따라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내면서 기피 제도가 재판 지연 전략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잇따라 내란전담재판부 기피신청을 내면서 제도가 재판 지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피신청이 인용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다만 신청만으로도 재판 진행이 멈추는 만큼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항소심 첫 공판 전날인 지난 13일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이어서 첫 공판기일인 14일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제3야전군사령부 헌병대장(대령) 측도 같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또한 세 사람은 이 기피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1부(윤성식 부장판사)에 대해서 기피신청을 내기도 했다. 김 전 장관 측은 "내란전담재판부에서 내란 가담자들의 판결을 낸 이상 공정한 심리를 받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피 신청을 심리하는 재판부까지 기피 신청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피신청은 형사소송법상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검사 또는 피고인 측에서 법관을 배제해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기피 신청 판단은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하고, 신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은 중단된다. 다만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할 경우 해당 재판부가 직접 간이기각 결정을 할 수 있다.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재판부가 바뀌고, 기각되면 기존 재판부에서 계속 심리한다.

기피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윤 전 대통령 등의 기피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김 전 장관 측의 '기피신청에 대한 기피신청'은 소송 지연의 의도가 명백하다는 이유였다.

현재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노 전 사령관, 김 전 대령에 대한 내란 혐의 재판은 심리가 중단된 상태다. 윤 전 대통령 등이 재항고 할 경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심리는 계속해서 멈춘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지난 1월 내란 혐의 속행공판에 출석해있다.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지난 1월 내란 혐의 속행공판에 출석해있다. /서울중앙지법

내란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의 재판 기피신청이 잇따르면서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기피신청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 재판부에 접수된 제척·기피·회피 건수는 총 416건이지만 인용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2024년에 접수된 405건 중에서도 인용 건수는 0건이다.

법관이 피고인·피해자의 친족인 경우 등 객관적인 제척 사유가 있을 때는 재판부가 스스로 회피하거나 재배당 절차를 거친다. 이 때문에 기피 신청 사건에서는 재판부의 선입견이나 불공정한 태도 등 주관적 사유를 인정 받아야 해 인용 문턱이 높다.

앞서 김 전 장관 측이 주장한 '공범에 대한 유죄 판단'도 객관적인 기피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김 전 장관 측은 앞서 내란전담재판부 두 곳 모두에 기피신청하며 "내란전담재판부에서 내란 가담자들의 판결을 낸 이상 공정한 심리를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재판부가 사건별로 개별 판단을 하는 만큼, 동일하거나 유사한 쟁점에 대해 반복적으로 판단했다는 이유만으로 객관적인 불공정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특히 지방 법원처럼 형사합의부 수가 적은 곳은 같은 재판부가 공범 사건을 연이어 심리하는 경우도 많아, 이를 폭넓게 기피 사유로 인정할 경우 재판 진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피신청이 반복되는 이유는 신청만으로 재판 절차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다른 재판부가 기피신청을 심리하는 동안 본안 재판은 멈추기 때문에, 승산이 낮더라도 심리를 늦추는 효과는 낼 수 있다.

지연 목적으로 제도를 악용할 경우 제어 수단은 마땅치 않다. 기피신청은 헌법상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만큼 신청 자체를 제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이기각 결정을 통해 심리를 이어가는 방법이 있지만 소송 지연 목적이라고 명확히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간이기각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법원 관계자는 "기피신청은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제도지만, 기피 신청을 하면 재판이 중단되는 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재판 지연 전략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원도 간이기각 등을 통해 절차 지연을 막고 있지만, 당사자의 방어권 보장과 재판 효율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y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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