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법원의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사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내 로펌들이 선점 경쟁에 나섰다. 헌법재판관·헌법연구관 등 헌법재판소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등 6대 대형 로펌은 헌재 출신 인력을 중심으로 재판소원 TF와 전담팀을 꾸렸다.
재판소원 제도는 법원의 확정 판결로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경우 헌재가 심사할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존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해 기본권 구제 수단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정을 추진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출신 변호사 수요가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앤장·태평양·세종 등 헌법소송 TF 구성…헌재 출신 전면 배치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은 기존 '헌법소송팀'을 중심으로 재판소원을 대응하고 있다. 헌법소송팀은 헌법 소송 및 헌법적 쟁점을 가진 소송과 자문 업무를 수행하는 팀이다. 헌법재판관 출신 목영준(10기)·강일원(14기) 변호사 등이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앤장 관계자는 "재판소원제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제도가 어떻게 운용될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법적 쟁점이 파생될지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태평양 역시 최근 30여명 규모의 재판소원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헌재 선임 헌법연구관 출신인 김경목(26기) 변호사가 TF를 총괄 중으로, 대법관 출신인 차한성(7기)·이기택(14기) 변호사, 헌재 연구부장 출신 한위수(12기)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태평양 관계자는 "향후 상황을 보면서 관련 전문가 영입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며 "뉴스레터 등 홍보에도 힘쓰고 있고, 세미나 개최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종 헌법소송팀에는 민일영 전 대법관(10기)을 비롯해 공법소송 전문가인 부장판사 출신 배호근(21기) 변호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확인제 위헌 결정 사건 등을 수행한 김광재(34기) 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헌재소장 직속 헌법연구관을 지낸 염동신(20기) 변호사도 팀에 합류해 헌법소송 대응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세종 관계자는 "재판소원 도입은 소송 실무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진전 상황을 면밀히 살필 것"이라며 "헌법재판관 출신 영입 및 전담 대응팀 신설도 고려하고 있다" 고 밝혔다.
율촌 역시 재판소원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헌재 헌법연구부장을 지낸 윤용섭(10기) 고문을 비롯해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곽상현(21기) 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회 파견 판사를 역임한 권혁준(36기) 변호사가 실무를 맡을 예정이다. 헌재 근무 경력이 있는 변호사 추가 영입도 추진하고 있다.
광장은 지난 4일 헌법재판팀을 출범했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지낸 김정원(19기) 변호사를 중심으로 헌법연구관 출신 지영철(17기)·강을환(21기)·진창수(21기)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화우도 이달 초 대법관 출신 이인복(11기) 변호사를 필두로 재판소원 TF를 출범했다.

재판소원 시행에 따라 로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제도의 실효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재판소원을 통해 억울한 피해자가 헌재 판단을 통해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는 평가도 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뒤 명백한 기본권 침해가 드러나더라도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재심 절차 외에는 바로잡을 방법이 없어 기본권 구제의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반면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해 사법 시스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3심제와 재심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소원이 추가될 경우 사건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헌재와 법원의 사건 처리 지연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헌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될 경우 연간 1만 건 이상의 사건이 추가로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헌재 접수 사건이 3092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건 규모가 현재보다 최대 3~4배까지 늘어나는 셈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재판소원이 본격화될 경우 실질적 4심제로, 기존에 헌재 계류중인 사건마저 늦게 처리될 것"이라며 "헌재에서 위헌으로 결론난 판결은 다시 1심부터 진행해 전대미문의 '재판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재판소원이 기본권 구제를 강화하는 측면보다 사건 쏠림으로 오히려 기존 사법 절차를 통한 권리를 구제 받으려는 국민들의 기본권(재판절차진술권 등)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또 다른 변호사는 "재심 제도가 있지만 실제로 재심이 많지 않은 것처럼,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돼도 얼마나 실질적으로 운영될지는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에 따른 4심제 우려를 두고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은 "재판소원 제도 도입 과정에서 제기된 정책적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이른바 ‘4심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헌법재판연구원을 중심으로 해외 판례와 실무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