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밍엄의 눈물'…안세영, 더 강해질 이유를 얻다 [박순규의 창]
  • 박순규 기자
  • 입력: 2026.03.09 10:10 / 수정: 2026.03.09 11:17
셔틀콕 여제 안세영이 8일(현지시간) 왕즈이와 2026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결승전에서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안타까워하고 있다./버밍엄=AP.뉴시스
'셔틀콕 여제' 안세영이 8일(현지시간) 왕즈이와 2026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결승전에서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안타까워하고 있다./버밍엄=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셔틀콕 여제' 안세영(24·삼성생명)이 8일(현지시간) 영국 버밍엄 코트 위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쏟았다. 한국 선수 최초의 전영오픈 여자 단식 2연패를 눈앞에서 놓친 회한, 그리고 먼 길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객석을 지켜준 가족들을 향한 미안함이 교차한 '버밍엄의 눈물'이었다.

공식전 36연승, 그리고 결승 상대였던 왕즈이(중국·세계랭킹 2위)를 상대로 이어가던 10연승이라는 압도적인 대기록은 우리에게 '안세영의 승리는 당연하다'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결승에서 왕즈이에게 0-2(15-21 19-21)로 패배한 결승전은 아무리 독보적인 1인자라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스포츠의 냉혹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웠다.

안세영을 만날 때마다 좌절하며 자국 언론으로부터 '공안증(안세영 공포증)'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까지 얻었던 왕즈이는, 10번의 뼈아픈 패배를 거름 삼아 11번째 맞대결에서 기어코 반란을 일으켰다. 평소답지 않게 범실이 잦았던 안세영의 틈을 왕즈이는 끈질긴 수비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는 단순히 안세영의 당일 컨디션 난조나 기량 하락이라기보다, 승리를 향한 도전자의 간절함과 치밀한 준비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전영오픈 시상대에 선 은메달의 안세영(왼쪽)과 공안증을 극복하며 정상에 오른 왕즈이./버밍엄=AP.뉴시스
전영오픈 시상대에 선 은메달의 안세영(왼쪽)과 '공안증'을 극복하며 정상에 오른 왕즈이./버밍엄=AP.뉴시스

시상대 아래에서 훔친 '24살 여제의 눈물'은, 그동안 1인자의 왕관 무게를 견디며 얼마나 숨 막히는 압박감과 싸워왔는지를 여실히 대변한다. 천하의 안세영 역시 피나는 노력을 바탕으로 코트에 서는 '사람'일 뿐, 영원히 승리만 입력된 기계는 아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세계 스포츠 역사를 수놓은 위대한 영웅들 역시 흠집 없는 무패의 탄탄대로만 걷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진정한 '전설'의 반열에 올린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참담했던 패배의 순간들이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역시 데뷔 초창기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배드 보이즈'가 펼치는 거친 수비에 막혀 매번 우승 문턱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조던은 패배에 굴복하는 대신, 상대의 거친 플레이를 이겨내기 위해 혹독하게 몸을 키웠고 결국 전무후무한 시카고 불스 왕조를 건설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도 마찬가지다. 소속팀에서는 모든 것을 다 이룬 그였지만,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만 입으면 번번이 결승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 패배 직후에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돌연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뼈아픈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그는, 기어코 조국에 코파 아메리카와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모두 안기며 축구사를 새로 썼다.

"부모님과 팬들에게 죄송하다. 오늘은 내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지만, 더 강해져서 코트 위로 돌아오겠다."

경기 후 안세영이 남긴 이 묵직한 다짐은, 그녀가 이미 패배의 사슬을 끊고 일어설 준비를 마쳤음을 시사한다. 36연승의 대기록이 중단된 것은 뼈아프지만, 오히려 어깨를 짓누르던 '무패'라는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안세영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녀가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무결점의 선수여서가 아니다. 넘어질 때마다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셔틀콕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결코 꺾이지 않는 투지 때문이다. 버밍엄에서 흘린 슬픔의 눈물은, 안세영이 더 완벽한 챔피언으로 진화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이자 '더 강해질 이유'로 작용할 것이다. 여제의 진정한 전성기는, 어쩌면 이 눈물과 함께 다시 시작되고 있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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