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정부가 중증응급환자 이송이 지연돼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지자체에 참고해 만들라고 보낸 표준지침에는 병원에 수용 의무를 뒀는데 최근 발표한 대책에는 수용 의무를 두지 않았다. 응급 상황 시 수용 의무는 표준지침을 만들 때 환자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핵심 조치로 요구했던 내용이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광주광역시·전북특별자치도·전라남도 대상으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중증응급환자 이송이 지연될 경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안정화 처치가 가능한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해 환자를 수용하도록 했다. 선정된 병원은 수용 의무가 없으며 수용을 거부해도 제재 조치가 없다.
하지만 2024년 복지부가 의료계, 환자단체와 논의해 만들어 지자체에 제정하도록 요구한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에는 수용 의무가 담겼었다. 중증응급환자나 응급 분만환자가 발생했는데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용 곤란을 고지한 경우, 각 지역 시도응급의료위원회에서 환자 상태, 수용곤란 고지 사유 등을 고려해 사전에 정한 기준에 따라 중앙응급의료센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의료기관을 선정하면 환자를 의무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환자단체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핵심 조치로 요구했던 사안이다.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은 2019년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수용을 거부해 사망한 동희(당시 5세) 군과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2022년 12월 시행된 응급의료법 개정안(동희법) 후속 조치다. 복지부는 2024년 4월 광역자치단체 17곳에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표준지침(안)을 보내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일부 지자체들은 복지부 표준지침을 토대로 의무 수용이 담긴 지침을 만들어 현재 시행하고 있다. 다만 표준지침을 참고해 만든 지자체 지침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응급의료법 개정을 통해 수용 의무에 대한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은 수용 의무 자체를 두지 않았다.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회 회장은 "선정한 우선수용병원에 법적 수용 의무를 두지 않으면 응급실 뺑뺑이 해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언급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5년 10월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한 보건의료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중증 응급환자 즉각 수용 의무 강화'(29.5%)'를 가장 많이 원했다. 이어 '중증 응급환자 수술·시술 가능 인력 확충'(26.4%), '실시간 병상·환자 진료정보시스템 구축'(19.9%) 순으로 꼽았다.
국회서도 법적 수용 의무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시범사업에서 적정 병원 찾지 못해 시간 지체 경우 환자 우선수용병원 이송해서 최소한 안정화처치 하겠다고 했는데 병원들이 반드시 환자 받아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며 "시간 지체된 환자는 안좋은 결과 이어질 가능성 높은데 병원은 민형사상 책임 때문에 환자 받는 것 꺼릴 수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의무 수용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은 "정부가 시범사업 기간 병원이 진짜 수용불가 상황인지 파악하는 차원에서 수용 의무를 뺀 것으로 보지만, 진료가 가능한데도 거부한 경우는 제재가 있어야 응급실 뺑뺑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선수용병원 선정 등 시범사업으로 하는 것"이라며 "각 지자체들이 표준지침을 통해 만든 이송지침은 그대로 유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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