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범행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를 막기보다 절차적 외관을 갖추는 데 관여했다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를 뿌리째 흔들었다"고 질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2시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를 받는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법정 구속했다.
이날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 혐의를 제외한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조은석 특별검사팀(내란특검)의 구형량인 징역 15년보다 높은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무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실현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한다"며 "그럼에도 내란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외면하고 그 일원으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1시간가량 선고가 진행되는 동안 한 전 총리는 재판부를 향해 앉은 채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유죄…"내란죄는 방조 범죄 성립 안 해"
우선 재판 과정에서 선택적 병합 형태로 추가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유죄로 봤다. 당초 공소제기 됐던 '내란 우두머리 방조'는 범죄로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내란죄는 필요적 공범으로 내부자들은 각 역할에 따라 우두머리·중요임무 종사 등으로 처벌될 뿐 방조범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내란 방조와 중요임무 종사는 범행의 주체·시기·장소·구체적 행위가 동일해 공소장 변경은 적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및 포고령 발령, 군·경을 동원한 국회·선관위 점거와 출입 통제 등이 형법상 '폭동'에 해당해 내란 행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이 과정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라는 요건을 형식적으로라도 갖추도록 관여한 행위 △국무회의 운영·소집 통지·회의록 작성 등 총리로서의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 △국무위원 부서 외관 형성을 시도한 행위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등 지시 이행 방안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논의한 행위 등을 통해 내란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일부 국무위원만을 선별 소집하는 과정에 관여했고, 특히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재촉하며 소집 이유를 알리지 않은 점을 두고 "계엄 관련 국무회의임을 알면 오지 않아 의사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위증 유죄…행사 혐의만 무죄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 혐의도 모두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 등과 공모해 작성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허위공문서 작성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비상계엄 선포가 마치 국무총리·국무위원 등이 선포 전에 부서한 문서에 의해 이뤄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작성된 선포문 표지 폐기를 지시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강 전 부속실장이 해당 표지를 정식 보관·편철 등 사용하지 않고 사무실 서랍에 보관했다"며 "행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아울러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위증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학력·경력·지위 등을 종합했을 때 불과 약 3개월 만에 문건 교부·배포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12·3 비상계엄=친위 쿠데타"…윤석열 '경고성 계엄' 꼬집어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12·3 내란'으로 규정하며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대통령과 그 측근 세력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며 "이는 이른바 '친위 쿠데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위로부터의 내란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성이 크다"며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내란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념 자체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가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증거조사 등을 통해 범죄 사실이 드러난 뒤에야 최후진술에서 사과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진지한 반성이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윤 전 대통령 등이 계엄 선포를 이른바 '경고성 계엄' 이라고 주장하는 행태도 꼬집었다. 재판부는 "최근 우리 사회에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나 이를 정당화하는 잘못된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헌법과 법률에 근거 없는 계몽적·잠정적·경고성 계엄을 당연시하거나, 저항권을 평상시에 쉽게 주장하고, 선거 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2·3 내란은 이러한 왜곡된 인식과 주장을 양산하거나 그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내란 사태가 비교적 조기에 종료되고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점을 두고는 "내란 가담자들 때문이 아니라,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시민들의 용기와 신속히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정치권의 대응, 위법한 명령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경·공무원들의 행동 덕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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