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해인 기자]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대사 범인도피 의혹'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 등 6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정민영 특검보는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특검팀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채상병 사건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대상이던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하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해외로 도피하게 한 윤 전 대통령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당시 국가안보실장), 장호진 전 국가안보실장(당시 외교부 1차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심우정 전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을 범인도피죄 등으로 이날 불구속 기소했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과 박 전 장관, 심 전 총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윤 전 대통령과 조 전 실장, 장 전 실장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가 함께 적용됐다.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해제에 관여한 범인도피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던 이재유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범죄 규명을 위해 조력한 사정이 있어 기소유예 처분됐다. 수차례 피의자 조사를 받았던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등은 지시를 적극 이행하진 않았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됐다.
지난 2023년 8월 해병대 수사단은 채상병 사건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지만 윗선의 외압으로 국방부로 회수됐다. 그러자 이른바 'VIP(윤석열) 격노' 등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됐고, 같은해 9월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이 전 장관을 공수처에 고발하자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해외로 내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드러냈다.
정 특검보는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 지속되며 결국 이 전 장관은 2023년 9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 대한 공수처 수사가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실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보내기 위한 절차에 나섰다"며 "2023년 11월부터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통령실, 외교부, 법무부는 절차와 요건을 무시한 채 이 전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분담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9월 조 전 실장에게 '이종섭 대사 임명'을 언급하며 향후 적절한 시기에 기회를 주자고 했다. 같은해 11월 17일 민주당의 특검 요구가 거세지자 이틀 뒤인 19일 윤 전 대통령은 조 전 원장에게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조 전 실장은 외교부에 이를 지시했고, 같은해 12월 장호진 당시 외교부 1차관에게 '이종섭을 1월까지 호주대사로 보내는 절차에 착수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장 전 차관은 외교부 소속 인사 담당 공무원들에게 "호주하고 모로코를 엮어서 빨리 진행하라. 이번주 내에라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에 상신하라", "1월 내에 부임할 수 있도록 진행하라"며 이 전 장관을 눈에 띄지 않게 대사로 임명하기 위한 윤 전 대통령 지시를 적극적으로 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실제로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2월 모로코 대사, 나이지리아 대사 등 임용 제청을 동시에 진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외교부 인사 담당 공무원들은 공관장자격심사를 형식적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미리 '적격'으로 기재한 심사결과서에 심사위원들의 서명만 받는 방식으로 형식적 자격심사만 거쳤다. 이후 이시원 전 비서관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이 전 장관의 인사검증 진행을 지시했는데, 이 전 장관은 자기검증질문서에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았거나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실이 있느냐'는 문항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채상병 사건 관련) 논란 가능성은 남아있는 이슈'라는 내용만 기재한 '문제없음' 취지의 검증보고서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보고했다. 이 전 비서관은 해당 내용을 삭제하고 '검증 결과 문제없음'으로 이 전 장관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검증보고서를 최종 승인했다.
지난해 3월 6일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상태였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나 논란이 확산됐지만 윤 전 대통령은 호주대사 부임 절차를 강행했다. 같은날 이 전 장관은 법무부 출입국심사과에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접수했고, 박성재 당시 법무부 장관과 심우정 당시 법무부 차관은 이재유 전 본부장에게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하라고 지시했다. 공수처가 반대 의견을 냈지만 출국금지 해제가 의결되며 같은달 10일 이 전 장관은 신임장 수여식도 생략한 채 호주로 출국했다.
정 특검보는 "해외 공관장 관련 절차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는 점이 수사 결과 확인됐다"며 "결국 이 사건은 채상병 사건 관련 수사외압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윤 전 대통령과 연결고리인 이 전 장관을 외국으로 도피시킨 중대한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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