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2004년 여름이었다. 함학수 성남고등학교 타격코치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 선수를 칭찬했다. "타자로서 재능은 말하지 않겠다. 인성이 너무 훌륭하다. 지금까지 많은 선수를 지도했지만 이 아이처럼 예의 바르고 운동에 진심인 선수는 없었다"라고 했다. ’박병호‘란 이름은 이렇게 뇌리에 새겨졌다. 그 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성장했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시련도 겪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 특히 ’하이 패스트볼‘에 적응하지 못해 2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접었다. 국내 무대로 돌아온 뒤에도 예전 같은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조금씩 존재감이 작아졌다. 그러던 지난 11월 3일. 포스트시즌이 끝나기 무섭게 박병호가 삼성 라이온즈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이튿날 키움 히어로즈는 박병호를 잔류군(3군) 코치로 선임했다. 연달아 놀랐다. 요즘 흔해 빠진 은퇴식도 거르더니 잔류군 코치라니. 그것도 키움의 FA 영입 의사를 거절했다. 21년 전 함학수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다. 제법 큰 돈을 번 스타 선수들이 은퇴 뒤 지도자의 길을 외면했다. 대신 방송 해설이나 예능 출연, 유튜브 제작 등에 나섰다. 화려한 은퇴식은 꼭 했다. 코치 처우를 비판했다. 이들은 외곽에서 ’훈수꾼‘이 됐다. 코치는 거부하면서 감독은 언제든 ’OK‘란다. 알고 봤더니 이들 중 대다수는 코치 제안을 받지 못했다. 박병호는 한 인터뷰에서 "난 말주변도 없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방송은 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박병호처럼 논리정연하게 자기 주장를 펴는 선수도 드물다. ’나대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듯싶다.
박병호는 통산 418홈런을 날렸다. 최정(518개) 이승엽(467개) 최형우(419개)에 이어 4위다. 6차례 홈런왕, 2차례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유일하게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다. 홈런왕 출신 코치는 박경완 LG 트윈스 배터리 코치밖에 없다. 박병호의 길이 ’남다른‘ 행보가 됐다. 잔류군은 부상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경기를 치를 수 없고, 정상 훈련도 불가능한 선수들이다. 잔류군 코치는 이들에게 용기와 재활의 기쁨을 심어줘야 한다. 선수만큼 코치도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박병호는 독서를 좋아한다. 정적인 선수다. 말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듣는 걸 좋아한다. 그의 꿈은 훌륭한 지도자다. "은퇴한 뒤 코치 말고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봉에 고된 직업.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스타 선수들이 외면하는 비인기 직종이 프로야구 코치다. 박병호가 지도자로서 능력이 있는지 아직 모른다. 선수로서의 명성과 지도자로서 성공은 별개다. 다만 그는 당장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쳤다. 한동안 박병호란 이름은 묻힐 것이다. 어딘가에서 소외된 선수들과 미래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박병호란 이름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꿈을 이룬 지도자의 이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