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허무’한 한국시리즈였다. 44년 동안 43번의 한국시리즈(1985년은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없었음)를 모두 봤지만 2025년처럼 황당한 적은 없었다. 일방적인 승리로 싱겁게 끝난 시리즈도 이번처럼 머리가 멍하진 않았다.
입단 3년 차의 설익은 투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감독의 놀라운(?) 결기. 감독은 마지막 인터뷰까지 "젊은 선수들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남 말하듯 한다. 감독 자신 때문에 진 것을 온 세상이 다 아는데 "상대가 잘했다"고 속 터지는 얘기를 한다. 그리곤 내년을 기대해 달란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다.

한화 팬들은 마지막 5차전이 끝나자 관중석에서 펑펑 울었다. 어떤 사람은 그깟 스포츠에 그렇게까지 난리냐고 하지만 한화의 우승을 목숨만큼 절실하게 기다렸던 사람들도 많다. 그 세월이 26년이다. 이들은 정규시즌 1위를 코앞에서 놓쳤을 때도 참았다. 플레이오프에서 다 잡았던 경기를 홀랑 말아 먹었을 때도 참았다. 우승 꿈을 부풀리던 9회초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해도 참았다. 그렇게 참고 기다렸기에 그 울음이 더 슬펐다.
감독은 내년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내년에 다시 기회가 찾아올까? LG 트윈스를 내년엔 이길 수 있을까? 와신상담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는 가만히 있을까? 삼성 라이온즈는 만만할까? 내년은 올해보다 더 어렵다.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는 내년에도 한화에서 뛸까? 둘은 이번 시즌 33승(폰세 17승, 와이스 16승)을 합작했다. 팀 승리 83승 가운데 40%를 둘이 이뤄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혹자는 "폰세와 와이스가 없었다면 한화는 이번 시즌 하위권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화가 치른 포스트시즌 10경기에서 국내 선발승은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문동주가 유일하다. 류현진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얻어 맞았다. FA 영입은 완전 실패했다.

이게 한화의 현실이다. 뭘 가지고 내년을 기대해 달라고 하는 건가. 가장 암울한 현실은 감독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특정 선수에만 의존할 것이고, 혹시 단기전에 간다면 데이터는 무시하고 고집대로 할 것이 자명하다. 김서현이 무슨 죄가 있나. 김서현은 최선을 다해 던졌다. 맞아 나가는데 도리가 없다. 얼마나 맺힌 게 많았으면 더그아웃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겠는가. 감독이 선수를 아낀다면 그런 상황을 만들어선 안된다.
지금도 가시지 않는 의문 한 가지. 한화엔 지난해 마무리를 맡아 23세이브를 거둔 주현상이란 훌륭한 투수가 있다. 주현상은 이번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 5이닝을 던져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LG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10월 26일 1차전 ⅔이닝 무실점, 27일 2차전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30일 4차전에서 김서현-박상원이 경기를 털어먹고 있는데도 주현상은 올리지 않았다. 주현상은 31일 5차전서 1-3으로 뒤진 6회초 등판해 1⅓이닝 동안 점수를 주지 않았다. 주현상은 한화 투수 가운데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유일하게 평균자책점 ‘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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