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동병상련(同病相憐), 사전적 의미로는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동정하고 같은 마음을 나눌 때 쓰는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고통의 이유는 달라도, 그 고통을 견디는 외로움만큼은 닮아 있습니다.
교도소나 유치장처럼 자유가 철저히 제한된 공간에서는 이런 감정이 더욱 진하게 피어날 수 있습니다. 죄의 무게나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그곳에선 모두가 동일한 조건 속에서 하루를 견디기 때문이겠죠. 철창 안에서 나눈 작은 눈빛 하나, 무심한 말 한 마디가 서로에게 의외의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사회적 신분 무너지고, '인간 존엄성' 위태로워지는 곳
주말까지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나무당 송영길 대표가 추석 명절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은 이 같은 인간적 풍경을 실감나게 보여줬습니다. 과거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가수 김호중과 같은 사동(舍棟)에 있었다는 인연을 언급하고, 직접 면회도 다녀왔다고 밝혔습니다.
정치인과 대중가수, 언뜻 전혀 공감대가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이어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아이러니 속에 인간의 진실이 숨어있습니다. 감옥은 사회적 신분이 무너지고, 인간의 존엄이 가장 위태로워지는 곳입니다. 자유가 끊긴 그곳에서 남는 것은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뿐입니다.

◆여주 소망교도소 복역 김호중, 2026년 11월 출소 예정
음주사고 직전까지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김호중은, 지금 철창 안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민영 교도소인 여주 소망교도소에서 복역 중이고, 형기를 모두 마치면 2026년 11월 출소할 예정입니다. 송 대표는 면회 후 "그의 얼굴이 오히려 맑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인간은 고통의 끝자락에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마련입니다. 세속의 빛이 꺼진 자리에 남는 건 오직 자신과의 대면 뿐입니다. 면회 며칠 후 송 대표에게 보낸 김호중의 자필 편지에도 그런 결이 묻어 있습니다. 고통과 반성의 언어, 그리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조심스러운 약속, 그 안에는 깊은 후회와 동시에 인간적 회복을 향한 의지가 읽힙니다.
좁은 감방안에서 사회적 지위나 직업의 차이는 무의미합니다. 연민은 무언의 약속을 듣고 싶어 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너졌던 누군가가 다시 일어서려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진심을 느끼고 위로하고 싶어집니다. 다만 그 연민이 '맹목적 동정'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합니다. 특히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공인일수록, 감정은 냉정한 이성과 균형 위에 서야 합니다.

◆연민, 무언의 약속을 듣고 싶어 하는 감정 '희망의 불씨'
김호중에 대한 연민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임의 인정입니다. 그는 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형이 확정됐습니다. 음주운전과 도주, 증거 은폐 정황은 결코 가벼운 잘못이 아닙니다. 연민은 책임의 부정이 아니라, 책임을 감내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단 한 번의 과오로 영원히 규정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를 통해 거듭나기도 합니다.
절벽 끝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늘 남아 있습니다. 연민은 그 불씨를 보는 마음이고 잘못은 지워지지 않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김호중이 이제 남은 형기를 어떻게 채워가느냐, 그리고 다시 대중 앞에 섰을 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냉정하지만, 동시에 용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건 결국 김호중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병상련이란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서로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아직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잘못의 대가를 치르는 시간 속에서 김호중이 다시 인간적 성숙을 이뤄내길, 그리고 언젠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그 시간이 진정한 변화를 증명할 수 있길 조용히 기대합니다.
